'지브리 할아버지'의 3598일…광기 어린 집착이 만든 하야오의 세상

아르떼 2026. 4. 13. 19:4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다큐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천부적인 재능과 120%의 노력이 만났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는 이렇게 작업하며 살고 있다"

제목만 보고는, 해이해진 삶을 반성하고 적어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같은 대가의 발끝이라도 쫓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관람에 임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작품은 삶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반적으로 창작의 비밀을 훔쳐보는 것 같은 다큐멘터리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후 7년 넘는 제작 기간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실은 창작의 비밀 아닌 비밀을 보여 준다. 천부적인 재능은 제쳐두고 어느 한 장면조차 허투루 만들지 않으려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 성실한 회사원과 같은 예술인의 초상을 포착하고 있다.

집과 스튜디오를 오가는 중간에 짬을 내어 산책하는 것 정도만 제외하면 앉으나 서나 작품 생각,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는 ‘지브리 할아버지‘(미야자키 하야오 집 근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르는 호칭!)는 사소하다 싶은 장면까지 디테일에 신경 쓴다.

극 중 히미가 빵에 잼을 바르는 장면의 작화를 하는 중 하야오는 맨얼굴에 마른세수하며 전의를 상실한 장군의 표정을 지어 보인다. 빵의 질감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를 장시간, 그리던 종이를 버리기를 수백 번, 칼에 베여 나갈 때 출렁거리는 빵의 장면을 완성 후에야 비로소 안심… 하는 게 아니라 다음 작업으로 넘어간다.

세심한 종류의 작업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비현실적인 매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사실감을 불러일으켜 극에 몰입하게 하는 이유일 터. 수장이 그러하니 함께 작업하는 이들 또한 만만치 않은 디테일 작업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긴장하게 한다. 인물이 빠르게 뛰는 장면에서 몸이 뒤로 젖혀져야 하는데 그게 덜 표현됐다는 이유에서다.

"괜찮은데"라고 하는 하야오 감독의 반응에 혼다 다케시(<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에이스 애니메이터 출신!)는 아니라며 이전 작업을 폐기하고 다시 작화를 이어간다. 예술에서 광기는 기존과 다른 것을 지향하는 일종의 몸부림으로 이 다큐멘터리에는 더 나은 묘사, 종국엔 더 좋은 작품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미야자키 하야오 이하 스태프의 작업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안쓰러움이 무색하게 하야오의 철학은 확고하다. 경계를 넘어서려는 게 이유다. 그는 신작 발표마다 이전 작품의 퀄리티와 흥행을 넘어서는 결과로 자신의 경계를 깨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은퇴를 여러 번 번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을 넘어서는 후배 감독을 발굴하지 못한 탓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일하게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인정한 감독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으로 유명한 다카하타 이사오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작업하며 하야오는 마히토를 자기의 분신(?) 삼아 극 중 큰할아버지와의 관계 속에 다카하타 이사오와의 사이를 반영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한 연출자 하야오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 중간중간 아이디어가 딸려 생각이 막힐 때마다 파쿠짱(다카하타 이사오가 빵을 꾸역꾸역 먹는 걸 보고 하야오와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덥석 먹어 치운다‘라는 뜻의 ‘파쿠파쿠 ぱくぱく’에서 가져온 별명)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자문하며 괴로워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안타깝게도 2018년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래소년 코난>(1978)의 작화 감독이면서 하야오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오오츠카 야스오도 2021년 3월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만들면서 하야오는 많은 이를 떠나보냈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도 올해 나이가 85세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하야오는 지친 기색을 자주 내비치기도 하는데, 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과장해서 죽음도 끓어오르는 창작의 욕구를 억제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이야기를 짜고, 콘티를 구성하고, 그림을 그리고, 더빙 작업에 의견을 내는 등의 일에 몰두하는 것만 같다.

은퇴를 운운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백전노장의 고군분투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브리 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흥행에 성공하여 손해를 보지 않았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의 오스카상을 받으며 '역시 미야자키 히야오!' 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요령 피우지 않고 맡은바 작업의 100% 아니, 120% 이상이 되도록 몰두하는 지브리 할아버지의 태도는 이 글 서두에서 창작의 비밀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삶에 임하는 자세와도 다를 바가 없어서 질문체의 제목에 나름의 답변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세를 고쳐 잡게 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개봉까지, 3,598일의 제작 여정을 따라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하야오의 마지막 대사는 앞으로도 열심히 그리겠다는 새로운 각오의 표출이다. 그게 신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다. 나는 이렇게 살 것인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허남웅 영화평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