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겨울밤, 단칸방에서의 영상통화로 Frieze의 전설이 되다
신화를 깨우는 디자인의 심장
Methodology 와 Mythology
'어떻게(How)'보다는 '왜(Why)'
방법 대신 '신화'를 세워라
프리즈 런던을 넘어 사치갤러리로 이어진 여정
런던의 겨울은 어둡고 축축하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의 봉쇄령까지 내려진,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는 어느 유학생의 단칸방이라면 이야기는 시작부터 더 무거워진다. 그렇다, 바로 얼마 전 나의 이야기이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국에서 나를 떠나보내고 걱정 가득하신 할머니께 밤마다 “나 괜찮다”며 영상통화를 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내 손에 들린 작은 액정이 지구 반대편에 계신 내 할머니의 온기를 전해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 작은 스크린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시대와 질병의 장벽을 넘어 마음을 실어 나르는 ‘창(窓)’이자 공평한 문화적 가치를 전하는 ‘블랙 캔버스’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눅눅한 방구석의 확신은 가까운 미래에 프리즈(Frieze)라는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에서 최초 디지털 섹션이라는 전설을 쓰게 했던 나의 첫 번째 ‘미솔로지(Mythology, 신화)’의 시작이었다.

디자인=형상(形象) 만들기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예쁜 외형을 만들거나 매끄러운 시스템을 제안하는 기술로 오해한다. 하지만 디자인의 본질은 ‘아이덴티피케이션(Identification)’, 즉 대상에 독보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행위다. 동양의 지혜로 풀이하자면 디자인은 ‘형상(形象)’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형(形)’과 ‘상(象)’의 간극을 상당히 날카롭게 읽어내야만 한다. ‘형’은 눈을 뜨고 보는 물리적 실체다. 선의 굵기, 제품의 부피감처럼 망막에 즉각 맺히는 정보이자 기능의 영역이다. 반면 ‘상’은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세계다. 브랜드를 떠올릴 때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각, 형언할 수 없으나 찾게 되는 열망이 바로 ‘상’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 디자인의 진정한 묘미는 ‘형’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상’을 구축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기능을 사는 것 같지만, 가치의 위계가 높아질수록 결국 그 물건이 내뿜는 ‘상’을 소유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대상을 열망하게 만드는 디자인의 심장이다.

신화(Methology)의 마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전설이 되는 디자인에 도달할 수 있을까? 대다수는 습관적으로 ‘메소드(Method, 방법)’를 뒤진다. “색을 어떻게 써야 트렌디하고, 어떤 최신 프로그램을 써야 효율적일까?” 같은 고민에 매몰된다. 하지만 이런 방법론(Methodology)을 찾기 전에 우리가 너무 거대해서 혹은 너무 기본적이라 늘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미솔로지(Mythology, 신화)’이다. 이 둘은 분명 매우 다르다. 방법은 흔히 빠르지만 분명한 유행이 있고, 유통기한이 짧다. 반면 신화는 구축되고 세워지게 되면 시대를 관통해 나간다.
이 차이를 나는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유학 시절 뼛속 깊이 배웠다. 런던의 교수들은 내게 기술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반복적으로 이렇게 질문했다. “너의 Mythology는 무엇이냐?”. 그들은 프로젝트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이 기술이나 프로젝트가 왜 지금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알아가며 이 연결점을 미래의 징검다리로 만들어 증명하는 데 쓰게 했다. 기술이 미래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어떤 가치를 지닐지, 그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여 선명한 ‘다음’을 상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화’를 세우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이 소리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훈련을 거듭하며 깨달았다. 미솔로지는 허구의 전설이 아니다. 역사적 맥락과 시대정신 속에서 내 시각이 담긴 논리를 정립하는 ‘창조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놀라운 건, 이 신화가 제대로 일어서는 순간 방법론은 마법처럼 알아서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를 만들 때 ‘주행’이라는 기능에만 매몰되면 결과는 뻔한 양산형 하청 업무가 된다. 하지만 ‘이 차가 어떤 방식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가’라는 신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쌓아 올린 기술은 언제든 더 싸고 빠른 다른 것에 대체 당하기 일쑤다. 즉, ‘어떻게(How)’보다 ‘무엇(What)’과 ‘왜(Why)’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나는 어김없이 늘 현장에서 목격해왔다.

2021년 프리즈 런던에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아트 섹션을 만들 때도 나는 이 원칙을 똑같이 작동시켰다. 기술적으로는 알고 나면 간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난제는 “전통 미술의 성지인 프리즈에서 진짜도 아닌 디지털 작업이 캔버스와 나란히 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런던 단칸방의 생생한 영상통화 기억을 무기로,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단순한 기계가 아닌, 시대와 공간의 장벽을 넘어 문화를 공평하게 전할 수 있는 ‘블랙 캔버스’로 재정의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가진 것은 물 새는 월세방과 이야기뿐이었지만, 나만의 신화가 담긴 이 서사는 거대한 자본과 기술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은 물론, 콧대 높은 프리즈 본부까지 동시에 설득해 냈다. 결국 이야기가 끝날 때, 진실한 ‘왜’가 수억 달러짜리 기술력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발휘해 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사치 갤러리까지 이어지며 이제는 하나의 전형적인 포맷으로 안착했다. 방법은 언제든 바뀐다. 하지만 근원의 샘에서 퍼 올린 신화는 바뀌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물리적 ‘형’을 넘어 사람들의 영혼을 건드리는 ‘상’으로 진화한다. 좋은 디자인은 기술의 산물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존재가 세상에서 어떤 신화를 가지고 살아남느냐에 대한 처절한 증명이다. 신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욕망과 믿음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가리키는 원초적인 지도다.


왜(Why)? - '人Sight'의 시작
이 지도 없이 방법론(Methodology)에만 매달리는 것은 위험하다. ‘왜’라는 뿌리가 정리되지 않은 모든 방법은 결국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신화 속에서 하청 업무를 수행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예쁜 것(Pretty)’을 만드는 기술자가 되지 마라. ‘프리티’는 대개 “충분히 괜찮다”는 타협의 언어일 뿐이다. 당신은 대상에서 느껴지는 온기, 타인의 아픔을 견디며 생겨난 마음의 열기, 할머니의 옷장에서 나던 그리운 냄새와 같은 ‘뷰티풀(Beautiful)’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기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풍미이자 영혼을 뒤흔드는 예술의 본질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하는 일에서 ‘어떻게’를 고민하기 전에 ‘왜’ 이것이 존재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만의 신화를 세워라. 당신만이 발견한 세상의 틈과 본질을 두려워 말고 세상에 내보내라. 단순히 ‘형’을 다듬는 기술자가 아니라 ‘상’을 잉태하는 창조자가 될 때, 당신의 결과물은 비로소 누군가의 영혼에 잊히지 않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당신이 평생 찾던 ‘반짝임’은 원래부터 당신 안에 있었다. 그 반짝임을 끝까지 지켜내라. 그게 바로 당신의 세계를 바꿀 진짜 ‘人Sight’의 시작이다.

제이슨 김 브랜드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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