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4월의 백양사 - 이중섭 소설가

“더덕 돌솥비빔밥!”
여자 종업원이 먼저 말하며 웃었다. 어, 하고 쳐다보자, 생긋 웃으며 어느새 물잔과 물통을 식탁 위에 조용히 갖다 놓았다. 잠시 후 나이 든 주인 여자가 나타났다.
“오, 사장님. 어떻게 이런 훌륭한 종업원을 구하셨나요?”
주인 여자는 여자 종업원을 한참 동안 칭찬했다. 한국 생활 십일 년째인데 남편이 한국인인 스리랑카 출신이었다. 4시간 운전의 피로와 골치 아픈 가정일로 지긋지긋하던 며칠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열 가지 넘는 반찬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남길 수가 없었다. 소박하면서도 깔끔했으며 더구나 맛있었다. 허기진 뱃속을 순식간에 봄나물로 가득 채웠다.
해마다 사월의 첫 번째 토요일은 고향에서 봉안당 제사를 올린다. 오고 가는 길에 평소 들르고 싶었던 곳이 생각나면 차 머리를 그쪽으로 돌리곤 한다. 이번 백양사 길도 마찬가지였다. 출발 후 한 시간쯤 운전하다가 갑자기 인터넷에서 보았던 고불매 소식이 떠올랐다. 아직도 피어있을까 하는 의문은 뒤로 밀쳐두었다. 복잡한 머리를 어떻게든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굵직한 갈참나무는 여전히 듬직하니 서 있었다. 사월 초파일을 준비하는 광경이 여기저기 보였지만 절 경내는 고즈넉했다. 백양사는 언제나 조용하고 나른하게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늙은 부처를 닮았다는 고불매는 며칠 전 내린 매우(梅雨)로 이미 지고 없었다. 매화나무에는 꽃받침과 꽃자루만 달려 있고 그 아래는 꽃잎과 꽃가루가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고불매는 들렀을 때마다 마주했던 그 매화나무였다. 그때는 아직 고불매가 유명하지 않았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백양사를 생각하면 맨 처음 들렀던 때가 떠오른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시골 촌놈의 첫 여행이기도 했다. 세상은 푸르고 주위는 온통 신록으로 눈부신 계절이었다. 소년과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버스 안을 넘어 허공으로 메아리쳤다.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푸른 시절’의 노래로 한없이 날려 보냈다. 세상은 온통 소년소년, 초록초록, 소녀소녀, 연두연두로 가득했다. 그때 처음 도착한 곳이 깎아진 듯한 바위산 아래 조용히 앉아 있던 백양사였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백양사는 어느 인터넷에서 읽은 글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곳을 지나던 여행자가 쓴 글 같았다. 어느 겨울, 첫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백양사 입구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여행자가 절 구경을 한 후 한참이 지난 후에도 사내는 눈을 맞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암자에 들렀다 온 후에도 여전히 서 있자 조심스럽게 사연을 물었다. 졸업 후 십 년째, 첫눈이 내리던 날 만나자고 했던 여자 친구를 기다린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고 그런 사연에 불과했는데 왜 그때는 그 광경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글 아래에 달린 댓글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내들은 왜 그리 속이 없는지!’
어느 여자 댓글자의 구시렁거림이었다. 가끔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 없이 잊어버린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마애불처럼 깊게 새겨지기도 한다.
대웅전 뒤편에 팔 층 석탑이 서 있다. 백암산 정상의 절벽이 석탑의 배경이 되어 팔 층의 석탑이 한층 더 높아 보인다. 더구나 석탑 자리 입구에는 아주 오래된 모과나무가 파릇한 잎사귀를 내밀며 볽좀한 분홍 꽃을 준비하고 있다. 사월의 백양사에는 모든 것이 조용하게 움직인다.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대웅전 앞마당에 선다.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한 스님이 우둑하니 선 채 산 정상을 쳐다보고 있다. 조금 자란 검은 머리, 낡은 승복, 왠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모습이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절 생활이 지긋지긋해 보이는 세월에 닳은 비구의 얼굴이다. 눈빛이 그윽하다. 아니, 백여 년, 그 훨씬 이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애절한 눈빛이 절을 떠나려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백양사를 나와 다시 차에 오른다. 따스한 햇볕에 자꾸 졸음이 밀려온다. 사월의 백양사와 늙수그레한 스님과 그를 닮은 매화나무와 사는 것이 지긋지긋한 한 사내가 한데 엉클어져 자꾸만 머릿속을 흔든다.
/choin264@naver.com
Copyright © 광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