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현대판 십자군전쟁

이선정 기자 2026. 4. 13. 19: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신이 그것(전쟁)을 원하신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클레르몽 공의회 선포로 유럽과 중동은 무려 200년간 광기 어린 십자군전쟁에 휘말린다.

긴 전쟁에 지쳐 교황은 절대적 힘을 잃고 영주들은 약해졌다.

미국의 한 매체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교황 레오 14세의 이란 전쟁 비판 직후 주미 교황청 대사를 불러 질책하면서 아비뇽 유수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이 그것(전쟁)을 원하신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클레르몽 공의회 선포로 유럽과 중동은 무려 200년간 광기 어린 십자군전쟁에 휘말린다. 셀주크 튀르크로부터 위협을 느낀 비잔티움제국(동로마)의 알렉시우스 1세가 원군을 요청하자 교황은 영향력 확대,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향한 욕심으로 십자군원정을 부추긴다. 1291년 십자군 최후의 보루 아크레가 무슬림에 함락되기까지 9차례 출정이 이어졌는데, 애초 목표를 달성한 원정은 1차(1096~1099) 때뿐이었다. 제1차 원정에서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예루살렘왕국을 건설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는 이슬람 세력에 대부분 깨지며 흑역사를 쓴다. 그나마 살라딘과 ‘사자심왕’ 리처드 1세 간 ‘세기의 대결’인 제3차 원정(1189~1192)은 평화협정으로 끝나 무승부 정도로 기록된다. 나머지는 전쟁의 명분도 실리도 없었던 데다, 심지어 ‘신’을 내건 전쟁임에도 같은 기독교인을 학살하는 타락한 만행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4차 원정 때 십자군의 자라 및 콘스탄티노플(동로마) 학살이 대표적이다.

십자군전쟁은 중세의 몰락을 촉발한다. 긴 전쟁에 지쳐 교황은 절대적 힘을 잃고 영주들은 약해졌다. 그 틈을 타 국왕은 권력을 장악했다. 국왕과 교황의 관계가 역전된 상징이 ‘아비뇽 유수(감금)’다. 1309년 프랑스왕 필리프 4세가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강제 이전, 70년간 프랑스교황청 체제를 유지하며 교황의 권위를 추락시킨 사건이다.

작금의 중동 사태가 ‘현대판 십자군전쟁’에 비유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이란 전쟁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한 매체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교황 레오 14세의 이란 전쟁 비판 직후 주미 교황청 대사를 불러 질책하면서 아비뇽 유수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우리 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전쟁의 명분을 종교로 포장하겠다는 발상이 21세기에 통할 리 만무하다. 종교를 앞세운 전쟁인 십자군원정의 몰락이라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의 이런 어불성설에 레오 14세는 지난 10일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고 오늘날에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통쾌한 반박이다.

이선정 논설위원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