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심위, ‘입틀막 완패’의 교훈 새겨야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30전 30패.’
윤석열 정권 ‘입틀막 심의’의 치욕스러운 결말이다. 류희림이 이끌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무도한 언론 탄압에 대한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이기도 하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1일 문화방송(MBC)의 윤석열 전 대통령 ‘바이든-날리면’ 발언 보도에 대해 방심위가 내린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판결로 류희림 체제의 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내린 입틀막 제재 취소 소송 30건의 1심 재판이 모두 마무리됐는데, 법원은 단 한건의 예외도 없이 방송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방심위의 흑역사로 남을 이 전패의 기록은 이달 1일 열린 고광헌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 옛 방심위) 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입길에 올랐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류희림 체제에서 비상식적 제재가 무더기로 이뤄지면서 소송전이 잇따랐고 30전 전패를 기록했다”고 하자 고 후보자는 “잘못된 심의의 당연한 결과”라고 답했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방미심위를 꾸려가겠다고도 했다.
기왕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겠다고 했으니, 류희림 방심위에 전패를 안긴 법원의 질타를 곱씹어보길 권한다. 판결문에 입틀막 심의가 왜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지 조목조목 짚고 있으니 말이다.
입틀막 제재 취소 판결에서 법원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인용 보도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문화방송이 낸 소송에서 법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다양한 견해가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경쟁할 때 비로소 올바른 여론이 형성될 수 있고, 사회는 자율적인 규제와 정화 작용을 통하여 국가의 발전과 공공복리에 기여할 수 있으므로, 국가는 방송 내용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함으로써 방송의 본질적 역할이 부당하게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이런 취지의 언급은 다른 판결문에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행정기관에 의한 방송 심의는 위축 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 비춰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방심위도 그 이전까지는 ‘최소 규제’를 심의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류희림 방심위에 ‘자제’와 ‘신중’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수사에 불과했다. 심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역대급 법정 제재를 쏟아냈다. 심의의 칼날이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겨눴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국가검열기구’라는 오명이 붙었겠나.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이 류희림 방심위의 언론 탄압에 부역했던 김우석씨를 야당 몫 방미심위 상임위원에 추천한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방심위의 입틀막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방심위가 ‘정권의 청부심의기관’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 그러니 이재명 정부의 방미심위는 달라야 한다. 잘못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하고 명실상부한 ‘합의제 민간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
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합의제 정신, 소통,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등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정권의 의중만 좇다 언론 탄압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린 류희림 방심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고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발언 중에는 취임 즉시 실행했으면 하는 것도 있다. 방미심위 제재의 기준이 되는 심의규정의 정비다. 고 후보자는 “최소 규제와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모호한 심의규정은 명료하게 정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조항은 과감하게 삭제하겠다”고 했다. 실제 현행 심의규정은 시대착오적인 규제들로 가득하다. 정보통신 심의규정이 특히 그렇다. ‘막걸리 보안법’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국가가 방송·통신 내용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제재 권한을 지닌 행정기관의 심의가 일상화되면 언론인과 시민의 내면에 자기 검열 기제가 작동하게 되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미심위가 태생적으로 집권 세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여야 6 대 3 추천)여서 ‘편파 심의’ ‘정치 심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런 논란을 피할 방법은 하나다. 다수결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 콘텐츠 규제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정립해나가는 것이다. 방미심위에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합의제 기구’의 위상을 부여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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