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00억 기부에도…토종 mRNA 연구 1년째 ‘공회전’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6. 4. 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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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국내 첫 민간 全 주기
백신 개발 플랫폼 갖췄지만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정부 감염병 R&D 투자 줄어
사람 대상 임상 시험 ‘자금난’
차세대 ‘한타 백신’ 좌초 위기
지난해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의료원에서 열린 ‘정몽구 미래의학관’ 준공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사재 100억 원을 마중물로 시작된 국산 메신저리보핵신(mRNA) 백신 연구가 임상 진입을 목전에 두고 1년째 공회전 중이다. 생쥐 실험에서 미국 모더나와 협력해 만든 mRNA 기반 한타바이러스 백신 후보 물질의 방어 효과를 확인했지만,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할 자금 조달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감염병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서 사업이 좌초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대 백신혁신센터와 아이진·메디치바이오 컨소시엄은 질병관리청의 ‘우선순위 감염병 대유행 대비 신속개발기술 구축사업’에 지원한 후 최종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팬데믹 발생 시 최대 200일 안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체계를 미리 닦아놓기 위한 국책 사업으로, 선정 시 연간 최대 15억 원을 지원받게 된다. 2년 이내의 집중 지원을 통해 백신 시제품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고려대 백신혁신센터는 정 명예회장이 기부한 100억 원을 기반으로 설립된 국내 처음이자 유일한 민간 주도 전(全) 주기 백신 개발 플랫폼이다. 한타바이러스는 고열과 출혈, 신장 손상 등을 일으키는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으로 고(故)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6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이는 유행성출혈열 예방백신 ‘한타박스’가 1990년 국산 신약 1호로 상용화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 유행하던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켜 제조해, 장기간 면역 효과가 낮고 미국 등에서 유행하는 폐증후군(HPS)을 막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타바이러스 감염증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보다 효능이 높은 백신 개발에 대한 수요는 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타바이러스 감염증을 미래 팬데믹 감염병인 ‘질병 엑스(Disease X)’의 후보 중 하나로 분류했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20~30대 군인을 중심으로 매년 약 400~500명이 감염돼, 질병청이 선정한 ‘미래 팬데믹 대비 우선순위 병원체 9종’ 중 하나로 지정돼 있다. 고려대가 지난 2024년 모더나의 기반 기술을 활용해 mRNA 기반 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박만성 고려대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팀은 지난해 2월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용 백신을 접종한 결과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효과적으로 예방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1년여 동안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착수하지 못한 채 국책과제 선정만 바라보고 있다. 임상시험용 백신을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시설에서 생산하는 데만 최소 10억~20억 원 이상이 필요한 만큼 자체 예산만으론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고려대의료원은 기부금과 별개로 500억 원 상당의 자체 예산을 투입해 최신 인프라를 갖춘 연구시설을 만들었지만, 한 해 예산은 3억 5000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

민간 투자 유치도 벽에 부딪혔다. 한타바이러스 백신은 수익성과 거리가 멀다. 농촌과 군부대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소외 감염병’의 특성상 시장 규모가 작고 수익 예측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수백억 원의 임상 비용을 감수할 만한 유인이 떨어진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코로나19 직후 6610억 원까지 늘었던 감염병 R&D 투자액은 2024년 4343억 원으로 되레 줄었다. 전체 R&D 예산 대비 감염병 분야 비중도 2022년 2.2%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1.6%까지 하락했다. 백신혁신센터 관계자는 “mRNA 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 중국 등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코로나19 전과 비교하면 민관 감염병 관련 연구 과제가 절반 이상 급감했고 연구비도 크게 줄어 질병청의 지원 없이는 후속 연구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연구자들은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으로 정부의 ‘사후 지원’ 방식을 꼽는다. 수익성이 낮은 감염병 백신의 경우 민간에만 맡기면 개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모더나에 25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화이자에 19억 달러(2조 1000억 원) 등 연방정부 자금을 지원했고 1년 여 만에 mRNA 플랫폼 기반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했다. 독일과 일본 정부도 인허가, 특허 출원, 공장 설립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끝에 2023년 mRNA 백신을 손에 넣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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