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외국인들이 입은 것은 한복이 아니다
서구 패션 문법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비서구 언어
경복궁 앞에 서면 이상한 광경이 펼쳐진다. 한국어 한 마디 못 하는 프랑스 여성이 자주색 저고리를 단정히 여미고, 텍사스 출신 청년이 옥색 두루마기를 걸친 채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무언가를 되찾은 표정이다. 관광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념품 가게 앞 포즈가 아니다. 뭔가 더 깊은 곳을 건드린 반응이다.이 광경을 두고 흔히 '한복 체험'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말은 사태의 본질을 너무 가볍게 건드린다. 그들이 입은 것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150년간 자신들의 조상이 버린 무언가를 — 몸의 여백, 선의 흐름, 직선 대신 곡선으로 인체를 감싸는 방식을 — 낯선 땅에서 처음 경험하고 있다. 그 감각이 낯설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몸에 스민다는 것이 핵심이다.

패션의 역사는 사실 서구 재단술의 역사였다. 어깨선을 자르고, 허리를 조이고, 몸의 굴곡을 도드라지게 하는 방식. 19세기 양복이 세계를 점령한 이후, 옷이란 곧 '몸을 구조화하는 틀'이라는 공식이 전 지구적 상식이 됐다. 이 문법에서 벗어난 의복은 민속복이거나 무대 의상으로 분류됐다. 인도의 사리도, 일본의 기모노도, 아프리카의 칸가도 — 모두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것'으로 박제됐다. 감탄의 대상이되 일상의 옷장에 들어올 수 없는 것. 서구의 눈이 만들어낸 범주였다.
한복은 지금 그 공식에 조용히 균열을 내고 있다. 핵심은 한복의 구조다. 한복은 몸을 설계하지 않는다. 몸을 감싸되 누르지 않는다. 저고리의 짧은 상의와 치마·바지의 풍성한 하의는 인체의 비례를 재정의한다.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선은 착용자를 피사체로 만들지 않고 공간의 일부로 녹아들게 한다. 서양 재단이 몸을 '완성'하려 한다면, 한복은 몸을 '내버려둔다'. 이것은 미학적 차이가 아니라 철학적 차이다. 옷이 몸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대답이다.
이 철학은 사실 지금 세계 패션이 더듬어가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오버사이즈의 범람은 '몸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젠더리스 패션의 확산은 '몸의 성별을 규정하지 않겠다'는 저항이다. 몸을 조이는 것에 대한 피로감은 단순한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150년간 지속된 서구 재단 문법에 대한 누적된 거부감이다. 한복은 그 거부감이 도달하는 지점에 이미 서 있다. 뒤쫓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경복궁의 한복 체험 열풍이 곧 글로벌 패션의 지각변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광지의 낭만과 일상의 옷장 사이에는 거대하고 현실적인 간극이 있다. 한복은 아직 착용이 번거롭고, 소재의 현대화는 더디며, 이를 뒷받침할 장인 산업 기반도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 K-뷰티가 성분 혁신과 글로벌 유통망을 동시에 잡으며 세계 시장을 파고든 것과 달리, 한복은 아직 그 전략의 초입에도 서지 못했다. 열광하는 외국인들이 귀국 후에도 한복 실루엣을 일상에서 소화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향은 읽힌다. 그리고 방향이 보일 때 움직이는 자가 시장을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복의 구조적 철학(여백, 흐름, 공존)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형태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는 전통의 훼손이 아니라 전통의 확장이다. 사리가 현대 인도 여성의 일상복으로 살아 있듯, 한복도 경복궁 밖에서 숨 쉴 언어를 찾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K-패션의 다음 챕터다.
경복궁의 외국인들은 한복을 입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잠시 다른 몸의 언어를 빌려 입어본 것이다. 그 언어가 유창해지는 날, 패션의 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혼할까요"…'양도세 중과 부활' 앞둔 50대 부부의 고민 [돈앤톡]
- "중국은 더러워" 입방정…결국 쫓겨난 '럭셔리 수장' [장서우의 하입:hype]
- '노조 미가입' 블랙리스트 퍼지자…삼성전자 결단 내렸다
- "한국 기술자 쓸모 없으면 버려"…대만 '국산 잠수함'의 민낯 [조철오의 방산노트]
- "40만전자 가나"…주가 하락에도 삼전 '풀매수'한 초고수들 [마켓PRO]
- "또 일본 갈 줄 알았는데"…5월 황금연휴 1위 여행지 어디?
- CIS, 첨단 정밀 장비로 日 배터리 업체도 홀렸다
- "한국에 최우선 공급하겠다"…중동 6개국 '깜짝 선언'
- "호텔서 커피 마셨더니…" 조회수 '300만' 대박 영상의 비밀 [현장+]
- "32만전자 간다"…삼성전자, 역대급 잭팟 예고에 주가 '들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