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런 전통 중시·중계 혁신·미래세대 지원…‘한국판 마스터스’ 탄생의 조건
앱서 출전선수 모든 샷 분석 가능
이벤트·사인존 철저히 유소년 중심

마스터스의 ‘골든아워’는 챔피언에게 황금빛 세례를 안기는 주최 측의 철두철미한 장치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우승 후 고개를 젖히고 포효하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얼굴에 일몰 직전의 부드러운 햇볕이 드라마틱하게 쏟아졌다.
주최 측인 오거스타 내셔널은 챔피언 조가 마지막 18번 홀을 마칠 때의 일조량을 계산해 엽서 같은 풍경이 연출되도록 최종일 티타임을 짠다. 금빛을 내뿜는 햇볕은 정확히 그린 재킷을 입혀주는 시상식까지 제 몫을 다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4대 골프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가 올해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며 성공적으로 끝났다. 1934년 시작된 마스터스는 4대 메이저(마스터스, PGA 챔피언십, US 오픈, 디 오픈) 가운데 1860년부터 열린 디 오픈에 비해 역사가 턱없이 짧지만 상업성을 경계하는 전통, 중계 방식의 혁신, 세심한 미래 세대 지원으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골프 강국인데도 아직 세계가 주목하는 골프 대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한국 골프계가 받아들여 발전시켜야 할 점이다.
90회째인 이번 대회 기간에도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는 공중전화 부스에 줄이 길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휴대폰 등 전자기기 반입을 여전히 금지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인 골프 인플루언서 카이 트럼프가 대회장에서 찍은 ‘셀카’를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논란이 됐을 정도다. 카이는 연습 라운드 기간에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고 해명 글을 올려야 했다. 본 대회 전날까지만 카메라에 한해 사용이 허가된다.
최종일 18번 홀 그린 주변에 자리를 잡은 관람객들은 코스 내 스코어보드의 숫자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환호하고 또 아쉬워했다. 다른 홀 상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코어보드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 실시간 스코어 확인은 물론 중계까지 볼 수 있는 다른 대회와 달리 마스터스는 이렇게 불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지켜온 원칙을 워낙 확고하게 밀고 나가다 보니 관람객들도 이해하고 오히려 즐기는 고유의 문화가 됐다.
마스터스는 입장권 구매 기회를 추첨할 만큼 배타적이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가장 개방적이다. 참가 선수들의 모든 샷을 애플리케이션과 웹을 통해 즐길 수 있다. CBS방송의 110대 카메라와 IBM 인공지능(AI) 왓슨의 협업 덕분이다. 올해는 1968년 대회부터 지난해까지 최종 라운드의 샷을 검색해서 즐길 수 있는 ‘마스터스 볼트(저장고)’라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매년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 내 광고판이 없고 유튜브 채널에도 광고를 붙이지 않는다. 한 해 전체 수익의 70% 이상이 기념품과 입장권 판매에서 나오고 대회 상금도 수익에 따라 결정된다. 2016년 처음 마스터스 숍에 등장한 할아버지 형상의 피겨인 ‘놈(gnome)’은 올해도 최고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라 없어서 못 사는 기념품이 됐다. 기념품과 입장권 판매 증가 덕분에 마스터스는 미국이 이란과 전쟁 중임에도 올해 총 상금 225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회 하나에 걸린 상금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올해 전체 상금과 맞먹는 규모다.
주니어 골퍼들에 대한 지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어렸을 때의 경험은 미래의 새로운 스타를 길러내는 자양분이 된다. 마스터스는 아마추어 출전자에게 클럽하우스 내 숙소를 제공하고 유소년 이벤트 챔피언을 성인 대회 우승자처럼 대우한다. 이벤트 우승자 가족에게 마스터스 공식 연습 라운드 참관권도 준다. 또 마스터스 출전 선수 사인은 어린이·청소년만 받을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한다.
마스터스 기간 중 만난 한 교민은 “마스터스의 특별함은 원칙과 배려에서 나오는 것 같다”며 “다른 스포츠 이벤트들도 본보기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오거스타=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명 손쓸 일, 1명이서 해결”… 제조혁신 이끄는 ‘이 기술’
- “연말엔 더 오른다”…100만원 껑충 뛴 노트북, 언제까지 비싸질까
- [단독] 설계도만 있는 韓 SMR…加 수출 사실상 올스톱
- “생리통인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난임·유산 위험 ‘침묵의 혹’ 급증
- 현대차, 제네시스본부 재편…GV90 시작으로 신차 쏟아진다
- [단독] 제네시스 조직 개편 단행…글로벌 확장 ‘가속 페달’
- 트럼프 장남 측근 로비스트로 기용…中제약사, 美 안보심의 뒤집었다
- 中에 “대만 통일 지지” 선물한 김정은…‘용중통미봉남’ 노골화
- 주식투자 열풍에 ‘중개형 ISA’ 쏠림…증권가, 신탁형 접는다
- SMART도 표류 와중에…차세대 모델 키우겠다는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