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에서 온 꼬마가 여기 이렇게”…눈물 터트린 챔피언
‘메이저 중의 메이저 골프대회’ 마스터스 1타차 정상
6타리드 날리고 최종일 더블보기에도 끝내 그린재킷
“고개숙이고 꾸준히 나아갈 뿐, 여정의 일부 지났다”

90번째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가려진 12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의 4번홀(파3). 캐머런 영(미국)과 함께 멀찍이 공동 선두를 달리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에게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2.5m 남짓한 거리를 남기고 스리 퍼트를 범한 것. 한꺼번에 2타를 잃으며 우승 경쟁은 대혼전에 빠졌다. 1·2타 차이의 우승 경쟁자가 단숨에 7·8명으로 늘어나며 우승자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급변했다.
하지만 ‘오거스타의 신’은 지난해 도전 17번째 만에 마스터스의 주인공이 된 매킬로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듯했다. 그는 7·8번 홀 연속 버디로 승부의 우위를 다시 가져가더니 가장 유명한 ‘아멘 코너(11~13번 홀)’에서 2타를 줄이며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 홀 ‘탭인 위닝샷’을 넣은 매킬로이는 고개를 젖혀 포효했다. 16번의 도전을 모두 거부해오다 지난해 겨우 마음을 연 오거스타가 1년 만에 다시 매킬로이를 허락하며 ‘백투백 우승’을 안겨다 준 승부였다.
매킬로이는 지난해 골프 역사에 25년 만의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석권)을 달성한 지 1년 만에 이날 마스터스 역사상 24년 만의 2연패 기록을 세웠다. 최종 스코어는 12언더파 276타.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2개, 더블 보기 1개를 기록해 1타를 줄였다. 2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를 1타 차로 제쳤다. 셰플러는 세계 랭킹 1위, 매킬로이는 세계 2위로 이 대회에 나왔다. 세계 랭킹 톱2가 우승과 준우승을 나눈 것이다. 우승 상금은 450만 달러(약 66억 원). 지난해 420만 달러에 이어 올해 우승 상금과 그린 재킷도 매킬로이가 가져갔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상기된 표정으로 등장해 “그냥 계속 가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골프장이 인생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계속 가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꾸준히 나아가세요. 시간을 투자하고 올바른 것들을 연습한다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입니다.”
마스터스 2연패는 역대 네 번째이자 24년 만이다. 1965·1966년 잭 니클라우스(미국), 1989·1990년 닉 팔도(잉글랜드), 2001·2002년의 타이거 우즈(미국), 그리고 매킬로이다. 매킬로이는 1라운드 뒤 “마스터스는 한 번 우승해 보면 두 번째는 좀 더 쉬워진다고 믿고 있다”고 했는데 크고 작은 고비를 넘고 넘어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좋은 일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는 교훈을 새삼 얻은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며 “지난해의 최종 라운드(1오버파 후 연장전 승리)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 2·3타 뒤질 때도 있었지만 이후 안정적인 플레이를 했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마스터스 17번 출전 만에 첫 우승에 성공한 뒤 흐느끼며 울었던 매킬로이는 이후 얼마간 슬럼프를 겪으며 “내가 지금 뭘 좇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공허함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날 우승 뒤 그는 “이번 우승은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메이저 4승에서 5승까지 10년이 걸렸는데 6승째는 훨씬 빨리 나왔다”며 “숫자를 정해두고 싶지 않고 여기서 멈추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1라운드 공동 선두, 2라운드에 기록적인 6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린 매킬로이는 3라운드에 1오버파로 주춤하면서 6타 리드를 한꺼번에 까먹고 공동 선두로 내려앉았다. 분위기대로라면 3라운드에 7언더파를 몰아치고 공동 선두를 꿰찬 올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자 영의 우승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매킬로이는 대회 마지막날 아멘 코너에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다. 자신의 말대로 고개를 숙이고 기회를 엿보며 계속 나아간 끝에 경쟁자들이 나가떨어진 경기 중반에 승기를 잡았다. 11번 홀(파4)을 안전하게 파로 넘긴 매킬로이는 12번 홀(파3) 2m 버디로 2타 차 선두가 됐다. 쉬운 파5 홀인 13번에서도 버디를 잡았다. 티샷으로 페어웨이 오른쪽 끝에 공을 떨어뜨려 핀이 제일 잘 보이는 지점을 확보한 매킬로이는 8번 아이언으로 그린 옆 러프에 보냈다. 퍼터를 사용한 세 번째 샷을 핀 3m 남짓에 세운 뒤 버디를 낚았다. 이로써 3타 차. 3라운드에 아멘 코너에서만 3타를 잃은 탓에 공동 선두를 내줬던 매킬로이다. 그러나 4라운드에 이 세 홀에서 2타를 줄였다.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매킬로이는 티샷을 완전히 오른쪽으로 보냈지만 이미 경기를 마친 셰플러와 2타 차였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보기로 막은 매킬로이는 마음껏 포효했다. 관람객들은 “로리, 로리”라고 외치며 우승을 축하했다.
매킬로이보다 두 조 앞에서 경기한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는 매킬로이에 2타 앞선 채 전반 9홀을 마쳤으나 11·12번 홀 연속 보기를 범하는 등 아멘 코너에서 길을 잃었다. 지난해 연장 끝에 준우승했던 로즈는 영과 함께 10언더파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인 출전자인 임성재와 김시우는 각각 3오버파 46위, 4오버파 47위로 마쳤다.

매킬로이는 시즌 첫 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30승을 채웠다. 벤 호건(미국)이 만 37·38세에 1950·1951년 US 오픈을 우승한 게 최고령 메이저 2연패 기록인데 매킬로이도 만 36세로 버금가는 기록을 세웠다. 매킬로이는 메이저 대회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린 여덟 번 중에 여섯 번을 우승했다.
그는 흐름이 폭발적이지 못할 때 인내하며 기회를 가장 잘 만들 줄 아는 선수가 됐다. 이제 한 달 뒤 시즌 두 번째 메이저로 열릴 PGA 챔피언십의 우승 1순위 후보이기도 하다. 또 US 오픈과 디 오픈을 한 번씩 더 우승하면 4대 메이저를 두 번씩 우승하는 ‘미친’ 기록을 쓰게 된다. 먼 얘기지만 매킬로이는 기꺼이 긴 여정을 떠날 준비가 돼 있다.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홀리우드에서 자란 매킬로이는 “고향에서 큰 꿈을 꾸던 꼬마가 여기 이렇게 있다”고 울먹이며 “가정에서 저라는 쉽지 않은 사람을 감당해온 아내와 딸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는 말을 남겼다.
오거스타=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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