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터진 폭탄, 붓으로 받아내다
4월15일~5월11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고 작가가 4월 15일부터 5월 11일까지 여는 이번 전시회는 제목부터 ‘찬란한 봄날, 역설의 풍경’이다. 지난 2006년부터 20년에 걸쳐 고 작가가 그려온 '전쟁 풍경화' 20여 점이 한자리에 내걸린다.
당시 실명한 동생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폐쇄적인 군 조직 앞에서 책임도, 보상도 요구할 수 없었다.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고 작가는 그 무력감을 그림으로 돌렸다. 분노를 화면 위에 쌓으며 시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동생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그 너머로 계속 향했다. 북핵 위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학살. 세계는 멈추지 않고 전장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전장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독특하다. 뉴스 화면 속 전쟁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작가는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것, 혹은 잡으려 하지 않는 것을 더 또렷하게 본다. 폭격 이후 먼지처럼 쏟아지는 건물 잔해. 정유시설이 폭발한 뒤 시커멓게 치솟는 연기. 그 너머에서 계속되는 고통.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이다.
이란-미국·이스라엘 전쟁은 미사일 궤적이나 열감지 이미지 같은 비물질적 데이터로 소비된다. 전쟁이 스펙터클한 영화의 한 장면이나 온라인 게임의 일부처럼 비쳐지는 시대다. 그러나 고영미의 화면에서 전쟁 풍경은 신호의 집합이 아니다. 살과 피가 있는 현실이다.
현대전의 양상은 AI를 빼고 말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표적을 식별하고 작전을 설계하는 시대. 승인 한 번으로 다량의 목표물에 미사일이 날아간다. 기술은 정밀해지고 있지만 죽어 나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가자지구의 역설은 더 크고 깊다. 한때 나치 독일의 박해로 희생자가 됐던 이들의 후손이 이제는 같은 땅에서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둔갑한 모양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고 작가는 이 모든 모순을 찬란한 봄 풍경 위에 얹어 놓는다.
작가의 작업 방법론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그는 장지에 채색하는 전통 동양화 기법을 고수한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지난해에는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20년의 학문적 바탕과 실전 내공이 화면에 녹아 있다. 한지 콜라주 위에 쌓이는 색채의 층위는 기억이 몸에 쌓이는 방식과 닮았다. 찬란하게 아름다운 봄 풍경 속에 전쟁의 상처가 겹친다. 전시회 타이틀이 말해주는 '역설'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아름다움과 폭력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고 작가가 지난해에 연 개인전 ‘빨강의 기억’은 이번 전시회의 전사였다. 당시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을 '빨강'이라는 색으로 풀어냈다. 전사자의 피, 여성의 몸, 생과 사가 뒤섞인 색깔, 빨강은 죽음이자 동시에 탄생이었다. 전쟁이 야기하는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생명의 이미지가 한 색 안에 공존하는 것을 그려냈다.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 위에서 중동이라는 새로운 전선을 마주하며 한층 넓어진 지평을 보여준다. 작가의 세계관이 한 전쟁에서 다음 전쟁으로 가는 사이에 더 심화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중동과 유럽의 전쟁. 지리적 거리는 멀어도 작가의 몸은 반응한다. 뉴스 영상 속 난민이 끌고 가는 캐리어. 거리에 나뒹구는 시신들. 죽은 여성의 몸에 새겨진 표식들. 타인의 재난이 자신의 공포로 전이되는 감각. 고 작가는 그것을 기억하고, 축적해서 화면 위에 꺼내 놓는다. 고 작가의 작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안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좋은 영화는 첫 장면에서 결말이 암시되듯, 고 작가의 그림에는 그런 구조가 엿보인다. 찬란하게 피어난 봄 풍경이 종말의 서막처럼 읽힌다. 아름다운 것이 무너지기 직전의 순간을 그는 그리고 있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봄밤 거리에서 지는 벚꽃처럼, 아름답지만 어딘가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고 작가는 그 슬픔 안에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를 담는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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