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복잡성 커지는데 감독은 ‘공백’…‘전력감독원’ 신설 필요성 부각
정부, 전력망 기술기준 고도화 기반 등 제도화 논의 본격화
전기화 시대 대응 본격화, 전력망·전력시장 전반 감시·평가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화 가속으로 전력망 운영환경이 급변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감독할 독립기구인 ‘전력감독원’ 신설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중동전쟁으로 인해 원유 수입 다변화 등 기존의 에너지 안보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과 발전 비중 20% 이상 확대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태양광·풍력 등 출력 조절이 어려운 전원이 급증하면서 전력망 운영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출력을 자유롭게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이 봄철 경부하 시점 전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62.3%에서 2025년 81.1%로 상승했다. 반면, 연중 전력수요 격차는 같은 기간 48.7GW에서 60.2GW로 확대되며 수급 관리 부담이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출력제어 역시 급증해 운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제도적·감독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전력망 운영 기준인 ‘전력망 기술기준(그리드코드)’은 재생에너지 중심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출력제어·고장 대응 등 주요 운영 조치의 적정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할 상설기구도 부재하다.
전력시장 역시 구조적인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전력거래소 회원사는 2001년 19개에서 2025년 기준 7000개를 넘어서며 시장 참여자가 급증했고, 전력시장을 경유하지 않는 직접 PPA, 통합발전소(VPP), 분산에너지 특구 등 새로운 거래 형태가 등장하면서 시장 구조가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 감시 체계는 전력거래소 내 소규모 조직에 의존하고 있어 전문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전력망 운영과 시장 감시 기능이 한 기관에 집중된 구조는 ‘선수와 심판의 분리’라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정부가 제시한 해법이 ‘전력감독원’ 신설이다. 전력감독원은 전력망 운영기관과 분리된 독립적 전문기구로, 전력망과 전력시장 전반을 상시적으로 감시·평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전력망 분야에서는 그리드코드 고도화 및 이행 점검, 출력제어와 비상조치의 적정성 평가, 주요 설비 고장 원인의 체계적 조사 등을 수행하고, 전력시장 분야에서는 부당거래 감시, 시장 가격·집중도·지배력 분석을 통한 경쟁구조 평가, 신규·소규모 사업자의 시장 진입 장벽 점검, 장외거래 관리, 소비자 보호 등의 기능을 담당할 예정이다.
아울러 데이터를 통한 스마트한 전력시스템 관리를 위한 전력시장·전력망 정보공개 기준 마련과 분석보고서 작성도 전력감독원의 역할로 고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력감독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에 근거를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전력감독원 설립과 전기위원회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으며, 현재 관련 법안들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가 진행 중이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독립 감독기구의 필요성은 뚜렷하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이미 전력망 운영기관과 분리된 전문 규제·감독기관을 운영하며 시장 감시와 계통 안정성 확보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후부가 전기위원회(위원회 9명·사무국 9명)와 함께 별도의 전담 전문기관 없이 해당 책무를 맡고 있다. 또한 한국전력거래소의 시장감시실(7명)이 전력시장 감시 업무를 지원하고는 있으나 독립성과 전문성 양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 역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2025년 4월 28일, 스페인·포르투갈 전역이 동시에 정전되는 전례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스페인은 복구에 16시간, 포르투갈은 12시간이 걸리며, 지난 20년간 유럽 전력망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고로 기록됐다.
사고의 핵심 원인은 전력망 전압의 급격한 상승과 제어기능 상실로 판명됐다. 당시 태양광·풍력 발전기들은 전압 변화와 무관하게 운전됐고, 전압 조절 장치는 수동으로 조작되면서 급격한 변동에 적기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국지적인 전력망 진동과 부족한 안전 마진이 겹치며 설비가 연쇄 탈락했고, 주파수 유지를 위한 비상조치가 오히려 전압 상승을 부채질하는 역효과를 내며 전력망이 붕괴했다는 결론이다.
이는 에너지 대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참고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아울러 전압 조절 장치(분로리액터)의 자동화나 전압 안정장치인 ‘정지형 동기조상기(STATCOM)’ 등 전력망 안정에 필수적인 설비투자 책임을 두고 유관기관 간 ‘핑퐁 게임’이 지속되는 점도 고질적 문제로 대두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압·주파수 관리 실패가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술기준 정비와 함께 이를 강제할 감독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기후부는 14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전력 거버넌스 포럼’을 개최한다.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 학계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이번 토론회에서는 전기화 시대에 대응한 그리드코드 고도화와 전력감독체계 선진화 방안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에너지 대전환과 ‘전기화(Electrification)’의 가속으로 우리 전력 산업이 유례없는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보고,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전력감독원 설립과 제도 개선 논의를 구체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확산과 전력망 참여 주체의 폭발적인 증가는 운영의 기술적 복잡성을 높이는 동시에, 보다 전문적이고 실효성 있는 감독체계의 필요성이 커진 상태에서 이 같은 논의가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인지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