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한달 반…남은 원료는 한달치뿐” 영세 제조중기 이미 생산라인 멈췄다

홍석희 2026. 4.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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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 전쟁 피해·애로 접수 549건
대금 미회수 등 직접적 피해 ‘눈덩이’
정부 중기 추경 1.7조원 배정 역부족
10일 경기도 부천시 소재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인 신광엠피에서 화장품 및 식품 플라스틱 용기가 생산되고 있다. [연합]

“평소 대비 원료가 60%밖에 안들어와요. 매입가·매출가 상승은 다음 문제에요. 원료가 없어요, 원료가….”

최근 만난 국내 건자재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견·중소기업 업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주로 PVC 재료를 바탕으로 바닥채와 창호 등을 만드는 이 회사의 원재료 재고 물량은 현재 한달 치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회사 관계자는 “저희는 그래도 규모가 있지만, 작은 업체들은 이미 제작을 멈췄다는 얘기도 들립니다”고 전했다.

“두세달 버틸 수 있다던게 한달전이었어요. 이제는 한달여치 밖에 안남았습니다. 재고가 소진되면 오른 가격으로 원재료를 구매한 부분에 대해선 회사도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 화장품 제조업체는 현재상황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화장품용 용기부터 플라스틱 원재료인 나프타가 안들어가는 곳이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2월 말 발발한 ‘미국 이란 중동 전쟁’이 장기화 조짐이다. 주목을 받았던 지난 주말 양측의 협상이 ‘결렬’로 종지부를 맺으면서 중견·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말이 나온다. 이미 3월 들어 운송 차질과 계약 보류, 물류비 상승, 대금 미회수 같은 피해가 숫자로 찍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재료 수급난까지 겹쳤다. 현장에선 휴업·폐업 우려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한 중동 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 접수는 지난 4월 8일 기준 누적으로 549건이 집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피해·애로 발생은 391건, 발생 우려는 92건이었다. 피해 유형은 운송 차질이 52.2%로 가장 많았고 계약 취소·보류 36.3%, 물류비 상승 35.8%, 출장 차질 20.5%, 대금 미지급 20.2% 순이었다. 관련 집계는 지난 3월 27일 422건에서, 4월 1일 471건, 8일 549건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전쟁 직후엔 “불안하다”는 수준의 피해접수가 많았다면, 4월들어선 직접적인 운송차질 신고 건수가 늘어나는 셈이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플라스틱, 포장재, 화학 원료를 쓰는 제조 현장이다. 인천의 한 공단에서 자동차 외장 부품을 만드는 회사는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프로필렌(PP) 공급이 평소의 20%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화장품 용기 업체는 폴리에틸렌(PE) 재고가 “4월말까지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원가가 오른 수준이 아니라, 공장을 돌릴 재료 자체가 제 때 입고가 되지 않는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쟁 추경’안을 1조6903억원을 배정 받아 집행에 나선다. 확보한 예산은 ▷수출 중소기업 지원 ▷소상공인 민생 안정 ▷스타트업 열풍 조성 ▷지역 중소 제조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사용된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원료 공급과 자금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수출 중소기업을 돕고자 4622억원을 투입한다.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수출바우처로 각각 2500억원, 1000억원이 배정됐다. 소상공인 지원은 4952억원이 활용되고,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 출연금은 각각 600억원, 500억원으로 확정됐다.

다만 현장에선 “지원도 필요하지만 당장 급한 건 원료와 시간”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원유가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나프타, PE, PP 같은 중간 원료로 전환돼 실제 공정에 투입되기까지는 시차가 있다. 일부 업체들은 발주처와 납기 협의를 다시 해야 하고, 일부는 대체 거래선을 찾느라 웃돈을 주고서라도 물량 확보에 나서는 상황이다. 건자재업계 관계자는 “대형 업체들이야 버틸 여력이 있겠지만, 중소업체들은 이미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2월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80건으로 집계됐다. 1월을 포함한 누적 건수는 37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1건보다 32.4%(91건) 늘었다. 여기에 3월들어 발생한 ‘미국·이란 전쟁’ 때문에 버티던 중견·중소·소상공인들의 파산 신청 건수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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