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혼다의 '창자'는 전기차가 아니다
-전기차 사업 중단, 백기 아닌 속도조절
-다들 속도 조절 나서는데 혼다만 언급된 이유는...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차 사업 중단을 말하며 실제로 쓴 표현이다. 정말 자극적이다. 그래서 많은 보도가 이 문장을 곧바로 '백기투항'으로 번역해버렸다. 과연 이 발언을 패배의 언어로 봐야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배를 선언한 게 아니라 방향을 잘라내는 결단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지점에서 먼저 짚고 가야 할 게 있다. 혼다는 자전거에 엔진을 얹던 작은 제조업에서 출발해 슈퍼커브로 대표되는 생활형 이동 수단으로 커진 회사다. 대중이 실제로 쓰고, 고장이 적으며, 유지비는 낮고, 당장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F1 등 모터스포츠를 기술 실험실로 쓰는 공격성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반드시 양산과 수익으로 연결하려는 집착이 더 강했던 회사다.
그래서 혼다는 늘 현실에서 이기는 회사였다. 거창한 선언보다 팔리는 제품, 기술 데모보다 수익 구조. 이게 혼다의 본질이다. 이 부분을 안다면 혼다의 이번 결정이 항복이 아닌 당장 소비자의 삶에 도움이 되며 궁극적으로 이게 회사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술의 혼다' 라는 별명처럼 혼다는 공학자 중심의 회사이기도 하다. 기계적 완성도와 엔지니어링에는 강하지만 플랫폼 전략·소프트웨어 생태계·배터리 공급망 같은 판을 바꾸는 싸움에서는 상대적으로 느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EV 플러스와 아시모다. EV 플러스는 전기차로서 아시모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측면에서 분명히 앞선 기술이었다. 하지만 시장을 지배하는 제품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혼다는 잘 만드는 회사였지 판을 뒤집는 회사는 아니었다. 이 한계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보도처럼 혼다가 뒤쳐져서 포기했다고 보기엔 맥락이 맞지 않는다. 혼다는 전기차를 몰라서 빠진 게 아니라 지금 구조에서는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한 쪽에 가깝다. 북미 시장만 봐도 답은 분명하다. 대형 SUV와 패밀리카 수요는 여전히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에 쏠려 있고 전기차는 보조금이 빠지면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상황에서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는 건 점유율이 아니라 적자를 키우는 선택이 된다.
실제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GM, 포드, 스텔란티스는 모두 전기차 투자 속도를 늦추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제네시스 브랜드에서는 전기차와 수소차만 팔겠다는 결정을 번복하고 하이브리드와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건 혼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전환 속도를 다시 조정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도 유독 혼다만 패배자로 소비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한 축이 무너졌다'는 서사가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쓰기 쉽고, 읽히기 쉬운 이야기다. 복잡한 산업 구조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정책 변화나 수요 둔화 같은 번거로운 변수들을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 하나의 기업을 ‘추락한 상징’으로 세워두면 기사 한 편이 완성된다.
오히려 비교해야 할 대상은 토요타다. 토요타는 전기차 전환이 느리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차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하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으로 수익성을 지켰다. 이 방식이 느려 보일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오히려 강하다. 욕을 먹으면서도 현금흐름을 지켰고 시장이 흔들리는 지금 구간에서 버틸 체력을 확보했다.
이 지점에서 국내 산업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환에 상당히 깊게 들어와 있다. 전용 플랫폼, 대규모 생산설비, 글로벌 투자까지 이미 판을 크게 벌려놨다. 물론 상품 경쟁력과 속도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지금처럼 수요가 예상보다 느리게 올라오는 국면에서는 이 구조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상대적으로 덜 나온다. 대신 혼다의 ‘후퇴’만 강조된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보자. 미베 사장이 말한 "창자가 끊어진다”는 표현. 이걸 그대로 해석하면 답이 나온다. 창자는 생존과 직결된 기관이다. 그걸 끊어낸다는 건, 살기 위해 일부를 잘라낸다는 의미다. 혼다의 창자는 전기차가 아니다. 이 회사의 창자는 지금 돈이 되는 구조, 현실에서 팔리는 제품, 그리고 지속 가능한 수익성이다.
혼다는 지금 그걸 지키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이걸 '백기투항’이라고 부르는 건 쉽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순간, 산업을 읽는 시선은 거기서 멈춘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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