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빗 품은 미래에셋, 눈독 들이는 한투…가상자산으로 번진 증권가 전쟁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2026. 4. 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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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수수료만으론 못 버틴다”…증권사와 손잡고 ‘생존 동맹’
해외에선 이미 보편화…스테이블코인 부상에 규제 환경 변화 조짐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국내 초대형 증권사들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사들이거나 투자를 단행하는 등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미래에셋그룹은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을 인수했고, 한국투자증권도 코인원 지분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을 엄격히 떼어놓는 이른바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 분리)' 원칙 때문에 증권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달러 등과 가치가 연동된 서클, 테더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입장에서도 단순히 코인 거래 수수료만 받아서는 살아남기 힘들어져 외부 금융사와의 협력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데 도가 튼 증권사와 플랫폼을 가진 가상자산 거래소가 서로에게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Gemini 생성 이미지

증권가가 가상자산에 눈독 들이는 이유

미래에셋그룹은 지난 2월 미래에셋증권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국내 4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빗의 지분 92.06%를 133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코빗의 기존 주주였던 NXC(넥슨 지주사)와 SK스퀘어가 가지고 있던 주식을 미래에셋컨설팅이 전부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후 미래에셋그룹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임원 변경 신고를 마쳤고, 코빗의 경영진(이사회)에도 합류했다. 현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등 마지막 법적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미래에셋그룹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에 업계 라이벌인 한국투자증권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3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원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과 관련해 여러 방향으로 사업을 검토하고 있지만, 특정 업체 등에 대한 투자나 인수에 대해서는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증권도 3월20일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수익원 중 하나로 디지털 자산 등 신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증권사와 가상자산 거래소가 이렇게 손잡는 일이 드물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 주식 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는 지난해 유럽의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스탬프를 사들이며, 주식과 코인을 한곳에서 모두 거래할 수 있는 만능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3월16일에는 세계 1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한국 코스피 지수의 변동 폭을 10배로 뻥튀기해 수익이나 손실을 내는 고위험 투자상품(EWYUSDT)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한국 투자 펀드(iShares MSCI South Korea ETF)를 기초로 삼아 24시간 내내 거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때 투자를 시작하기 위한 보증금으로는 테더(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며, 비트코인 등 다른 암호화폐도 섞어 쓸 수 있다. 쉽게 말해 달러 대신 가상자산을 내고 한국 주식시장에 10배짜리 베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가상자산 규제 대책이 나온 이후,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이 가상자산을 직접 가지거나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금가분리' 정책을 펼쳐왔다. 이 정책은 명확한 법적 근거나 시행령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 당국이 일종의 지침으로 유지해온 '그림자 규제'에 해당한다.

미래에셋그룹이 금융사인 미래에셋증권 대신 일반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내세워 코빗을 인수한 것도 바로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코인원 지분을 직접 사려면 금융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금융 당국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이 금가분리를 점진적으로 없애 나갈 예정이다. 국회에서 가상자산과 관련된 기본 법안이 마련되면, 은행이나 증권사도 가상자산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길을 열어주겠다는 방침이다.

금융과 코인의 장벽, 스테이블코인이 깼다

정부가 이렇게 기조를 바꾼 결정적 이유는 테더나 서클(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의 등장, 그리고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지니어스법' 통과로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 판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코인 시장은 가격 변동이 심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코인)이 지배해 왔고, 거래소들은 사람들이 이 코인들을 사고팔 때 내는 수수료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에 격변을 불러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같은 진짜 돈이나 금 같은 실물 자산에 가치를 1대 1로 묶어두어(페깅) 가격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만든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이 투기나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대상이 되어버렸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안정적이어서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진짜 돈처럼 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물론 스테이블코인에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었다. 정말로 그만한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신뢰성' 문제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을 때 시장이 불안해지자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방어가 뚫리면서 가치가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키면서 신뢰성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다.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이 코인을 은행 밖의 화폐로 쓸 수 있게 보장해 주면서, 단순히 투자용이었던 기존 가상자산들은 존재의 의미가 약해졌고 가격 하락과 함께 투자자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거래소끼리 수수료를 낮추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단순 수수료만으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업계 1위인 업비트(두나무)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1조5578억원, 영업이익 8693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0.0%, 26.7%나 쪼그라든 수치다.

결국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살아남으려면 은행, 증권사, IT 기업 등과 손잡고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두나무가 네이버페이(옛 네이버파이낸셜)와 합병을 추진하고, 빗썸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과 생태계 확장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으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최대 화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다. 원화와 가치가 똑같이 1대 1로 고정된 코인이 나오면 일상적인 결제나 송금 등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누가 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권한을 가질지를 두고 관련 기관들의 이견이 커 실제 도입까지는 속도가 더뎌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관련 업계는 당초 올 상반기 안에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되기를 기대했지만, 현재로서는 하반기에나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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