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그린 재킷은 두 번 입어도 헐렁하지 않았다...물아일체(物我一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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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월요일 이른 아침 오거스타 내셔널 12번 파3홀, 레이스 크릭 위로 로리 매킬로이가 핀을 직접 겨냥했다.
12번 홀 레이스 크릭 너머 핀을 직접 겨냥한 티샷과 13번 홀 350야드 드라이브로 파5를 단숨에 장악한 연속 버디로 아멘 코너를 통과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계산이 없었다.
매킬로이가 오거스타의 잔디, 레이스 크릭의 물결, 72개 홀의 리듬과 하나가 된 그 일요일 오후(현지 시간)가 바로 물아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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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내 손이 가볍게 떨렸다. 이건 그의 손이 아니라 내 손이었다. 볼은 홀 2미터에 붙었다. 버디를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 거실에서 혼자서 뇌가 스포츠를 보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뇌과학에는 '일시적 전두엽 저하'라는 개념이 있다. 극도의 몰입 상태에서 판단의 사령탑인 전전두엽 활성이 일시적으로 낮아지고 대신 수만 번의 반복으로 다져진 기저핵, 이른바 '근육 기억의 창고' 이 신체를 통째로 지휘하는 상태다. 선수가 나중에 "아무 생각 없이 쳤는데 완벽했다"고 회상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최종 라운드의 매킬로이가 정확히 그랬다. 36홀 후 마스터스 역대 최다인 6타 차 선두였지만 3라운드에서 그것을 거의 날렸다. 카메론 영과 타이로 최종일을 시작했고, 한때 선두를 내주기도 했다.
전두엽이 살아있는 선수였다면 과거의 실패 '그 무수한 오거스타의 악몽' 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12번 홀 레이스 크릭 너머 핀을 직접 겨냥한 티샷과 13번 홀 350야드 드라이브로 파5를 단숨에 장악한 연속 버디로 아멘 코너를 통과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계산이 없었다.
기저핵이 전두엽의 참견을 조용히 차단하고 있었다. 최종 12언더파로 셰플러에 1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18번 홀 거친 드라이브도 결국 버텨냈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사물과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지를 뜻한다. 장자(莊子)의 사유에서 비롯된 이 말은 동양 무예의 극의(極意)이기도 했다.
검객이 검을 잊고, 궁수가 활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매킬로이가 오거스타의 잔디, 레이스 크릭의 물결, 72개 홀의 리듬과 하나가 된 그 일요일 오후(현지 시간)가 바로 물아일체였다.

그리고 한국의 월요일 이른 아침 TV 앞의 골퍼들은 1만 킬로미터 떨어진 채로 미러뉴런을 통해 그것을 함께 느꼈다.
마스터스 역사에서 연속 우승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잭 니클라우스(1965~66), 닉 팔도(1989~90), 타이거 우즈(2001~02), 그리고 매킬로이가 네 번째를 장식했다.
그러나 뇌의 입장에서 이 우승이 각별한 까닭은 따로 있다. 3라운드의 붕괴를 경험하고도 마지막 날 물아일체의 상태로 돌아왔다는 것, 흔들린 뒤 더 깊이 가라앉는 능력. 이것이 진짜 챔피언의 신경회로다.
한국에서는 임성재가 3라운드까지 2언더파 공동 29위로 선전하며 컷을 통과했고, 2년 만에 오거스타에 돌아온 김시우도 출전 기준 8회 연속 컷 통과라는 묵직한 기록을 이어갔다.
그린 재킷에는 닿지 못했지만, 이들의 뇌에도 오거스타의 기억 하나씩은 새겨졌을 것이다. 성적표에는 숫자만 남는다. 하지만 뇌는 숫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뇌는 장면을 기억한다.
오늘 아침, 당신의 뇌에 남아있는 오거스타의 장면은 어떤 홀, 어떤 순간인가. 뇌가 선택한 그 한 컷이 곧 당신이 스포츠를 보는 이유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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