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시의 도덕적 투쟁

1.
미국이 2026년 2월 28일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의 정치 수뇌부와 군사 기지를 기습 공격하면서 중동 지역은 전쟁의 포연이 가실 날이 없다.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을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주권 국가의 지도자들을 살상하고 이란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반문명적 폭력을 백주대낮에 자행한다. 그리고 이 전쟁을 수행하는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자신들의 SNS 미디어에 반문명적 폭언을 남발할 뿐만 아니라 스펙터클한 전쟁을 즐기는 양 각종 전쟁 무기를 사용하는 실시간 영상과 그 참담한 파괴 장면을 업로드하며 전쟁 미치광임을 자인한다.
이 악무한의 현실을 마주하며 전쟁의 광폭함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하물며 시는 또 얼마나 나약하기 그지없는 예술인가. 지상에 존재하는 뭇 존재를 절멸하는 가공할 첨단 무기의 파상 공격 속에서 시의 존재는 무엇일까. 문득, 팔레스타인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상기시킨 문제의식이 떠오른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워 인종 차별을 철폐한 넬슨 만델라(1918~2013)의 전언―"세계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위대한 도덕적 투쟁"을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문제의식으로 전유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넬슨 만델라의 전언을 전유하는 데에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역사적 과제―팔레스타인의 오랜 숙원인 민족해방을 비롯하여 이스라엘과의 평화적 상생 및 공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해결이 세계의 상상력에 공명하는 도덕적 투쟁에 전심전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을 비롯한 지구상 숱한 분쟁과 전쟁이 끊이질 않는 아수라의 삶 속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성찰은 시의 존재를 성찰하도록 한다. 시는 그러므로 이를 미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를 강조하고 싶다.
2.
팔레스타인의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1941~2008)의 시는 이를 여실히 노래한다.
어제 항구에서 그대를 보았다
가족도 없이…양식도 없이 떠도는 그대를
나는 고아처럼 그대에게로 달려갔다
조상들의 지혜를 물어보려고:
어찌하여 그대는 푸르른 그 들판을 떠나
감옥으로, 유랑의 땅으로, 항구로 가 버렸는지
그대가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소금과 그리움의 냄새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들판은 그대로 푸르른지?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나는 오렌지를 좋아한다. 항구를 미워한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덧붙인다:
항구에
나는 멈춰섰다. 세상은 한겨울이었다
우리에겐 오렌지 껍질이 있을 뿐, 내 뒤로는 사막이다!
― 「팔레스타인에서 온 여인」 부분
제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 건국(1948)과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창졸지간 강제 추방당한 나크바(Nakba)를 겪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일어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 중동전쟁,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 및 전략촌과 분리장벽 설치에 따른 침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금하든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유랑민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고향 들판의 푸르름과 고향 바다의 짠내음 속에서 오랫동안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항구로 내몰린다. 항구를 통해 그들은 조국의 땅을 등진 채 머나 먼 타방에서 고향 땅으로 돌아갈 날을 간절히 기대한다. 팔레스타인 시인에게 고향 땅은 어느 특정 부류의 사람들, 가령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배타적 독점권이 부여된 곳이 아니다. 그곳은 사랑과 우애와 공존이 삶의 바탕을 이루는 곳이다. 평화의 일상을 서로 공유하는 곳이다. 비록 그곳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폭압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시인은 그럴수록 고향 땅과 연루된 모든 것들을 그의 언어로 붙잡는다.
3.
이 땅에는 그래도 그 때문에 살 만한 것들이 있소: 4월의 망설임, 새벽의 빵 냄새, 남정네들을 위한 여인의 부적, 에스컬러스의 책들, 사랑의 처음, 돌 위의 풀, 피리 소리에 한숨짓는 어머니들, 그리고 기억에 대한 침략자들의 두려움.
이 땅에는 그래도 살 만한 것들이 있소: 9월의 마지막 날들, 마흔을 넘겼어도 젖무덤 고운 여인, 감옥에 해 드는 시간, 짐승의 무리를 그대로 닮은 구름들, 웃으며 죽음을 향해 오르는 이들에게 바치는 사람들의 환호, 그리고 노래에 대한 폭군들의 두려움.
이 땅에는 그래도 살 만한 것들이 있소: 이 땅에는 대지의 여인, 모든 시작과 끝의 어머니가 있소. 그녀는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렸다오.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오. 나의 여인이여, 나는 살 만하오, 그대가 나의 여인이기에, 나는 살 만하오.
― 「이 땅에는」 전문
고향에서 추방당해 유랑의 삶을 살고 있는 시인에게 고향과 연루된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의 소환 자체를 한갓 낭만적 추억에 잠긴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는 당장 실현될 수 없지만, 고향으로 귀환해야 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치적 열망이 깃든 시적 정동을 주목해야 한다. 분쟁과 전쟁의 위태로운 날 속에서 시인이 결코 저버릴 수 없는 것은 "모든 시작과 끝의 어머니" "대지의 여인", 즉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나의 여인"이 존재하는 바로 그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물론이지…/나는 죽음을 거부해야만 한다/또한 피 흘리는 노래들의 눈물을 태워버려야만 한다/그리고 올리브나무에서 가짜 가지들을 모두 쳐 버려야만 한다/내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두려움에 눈꺼풀은 떨려도/그건 폭풍이/포도주와…새로운 축배/그리고 무지개들을 내게 약속했기 때문이다"(「폭풍으로부터의 약속」)고 죽음에 대한 삶‒투쟁의 노래를 격정적 어조로 부른다.
4.
팔레스타인에 드리운 죽음의 장막을 걷어내기 위한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적 응전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의 시가 수행하는, 세계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도덕적 투쟁을 향한 시적 감응이다. 가령, 다음의 시에서 시적 화자의 마음을 따라가보자.
나는 흰 나리꽃을 꿈꿉니다.
새들 지저귀는 거리와 햇빛 밝은 집을
내가 바라는 건 선한 마음이지, 총알 채워 넣기가 아니예요.
내가 바라는 건 햇빛 맑은 날이지, 승리의 순간이 아니예요.
광포한……파시즘의
내가 바라는 건 새날을 기뻐하며 미소 짓는 어린 아이이지
전쟁하는 기계의 한 부분이 아니예요.
나는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을 살기 위해 왔지요.
황혼이 아니라
― 「병사는 흰 나리꽃을 꿈꾼다」 부분
시인은 전선에 있는 병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병사가 바라는 건 적을 제압하기 위해 "총알 채워넣기가 아니"고, "승리의 순간이 아니"고, 다시 말해 "전쟁하는 기계의 한 부분이 아니"라, "햇빛 맑은 날"과 "미소 짓는 어린 아이"와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에 "흰 나리꽃"이 피어있는 세상을 바란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병사는 이렇게 세계악(世界惡)의 사위에서도 세계를 사로잡는 도덕적 투쟁의 마음과 그 언어를 품고 있다. 전쟁에 맞서며 전쟁의 위력을 무력화(無力化)하는 시인의 위대한 도덕적 투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대결 갈등은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전이 반인간적 반문명적 폭력의 악마가 얼마나 끔찍스러운 만행으로 나타났는지, 세계시민들은 또렷이 지켜보고 있다. 게다가 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중동 지역에서 유대교 자민족중심주의가 팔레스타인 땅을 넘어 타종교 타자들 모두를 향한 무차별 적대적 무력 공세를 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 또한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비단 이것은 한국사회와 무관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최근 이란 전쟁의 국제사회 정치경제적 여파가 말해준다. 미국의 군사적 도움 요청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트럼프의 한국을 향한 날선 언어 비판이 단적으로 말하듯, 이들 전쟁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로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란 전쟁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전쟁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한 민주 역량을 바탕으로 한 반전평화를 향한 주체적인 비판적 사유와 판단이 절실하다. 이 과정에서 시가 수행하는 세계의 상상력을 붙잡는 '도덕적 투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도덕적 투쟁'이야말로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악무한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는 시(인)의 먼 길이리라.
나는 끝까지 먼 이 길을, 먼 이 길을, 가겠소
나는 심장이 멈출 때까지 먼 먼 먼 이 길을 가겠소…
― 「나는 이 길을 가겠소」 부분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감응과 교응―'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적 응전》,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