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만명 코인 투자하는데 한국에는 기본법도 없다
김태림 변호사 “글로벌 통화 전쟁인데 한국만 지체”
백악관 보고서처럼 韓 정부도 우려 해소 설계 필요
‘AI 강국’ 李정부, 스테이블코인 없이 AI경제 미완성
늦을수록 국익 손해, 당국·업계 함께 가되 빨리 가야
지난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33조달러(4경9022조원)에 달해 전년 대비 72% 급증했습니다. 이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결제 처리액을 합친 것을 넘는 규모입니다. 이에 마스터카드와 스트라이프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인수에 나섰습니다. 메타도 스테이블코인 결제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스테이블코인 입법조차 공백 상태입니다. 국회 입법 논의는 은행 50%+1주 은행 컨소시엄 및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 쟁점에만 머물며 겉돌고 있습니다. 이에 이데일리는 국내외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 시장 상황을 진단하고,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을 둘러싼 해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기고 및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주]
[김태림 AXIS Law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내 가상자산 거래 가능 이용자는 1113만명(거래 가능한 이용자 계정 기준)이다. 2021년 580만명에서 4년 만에 92% 증가했다. 작년말 주식 투자자(1456만명)에 근접하는 수치다. 가상자산 일평균 거래 규모는 5조4000억원이다.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하루 10조원을 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시장에 기본법조차 없다. 지난 2023년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불공정거래 규제와 이용자 보호에 한정된 1단계 입법이다. 산업 구조 전반을 설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3000억달러(10일 기준 445조6500억원)를 돌파했다. 2020년 대비 6배 성장이다. 미국은 2025년 7월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를 제정해 연방 차원 최초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완성했다. 유럽연합(EU)는 미카(MiCA)를 시행했으며, 일본은 자금결제법을 개정했다.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핵심 전략을 “토큰화 자산과 온체인 결제를 활용해 글로벌 유동성을 자국 금융시장으로 흡수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것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통화 전쟁이다. 그런데 1113만명의 투자자를 가진 한국만 아직 출발선에 서 있다.

국회에는 현재 민병덕·이강일·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디지털자산 종합법안과 안도걸·김현정 민주당 의원 및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스테이블코인 특화 법안, 지난 9일 발의된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의 가상자산기본법 제정안 등 총 7건이 계류 중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26년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1분기 내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안소위 상정조차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왔고, 결국 1분기 입법 목표는 지켜지지 못했다.
오는 15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재개된다고는 하지만 조율해야 할 쟁점이 만만치 않다. 여야 간 규제 방향에 대한 이견이 크고, 부처 간 입장 차도 여전하다. 여기에 6월 지방선거라는 정치적 변수까지 겹쳐진다.
입법이 어려운 이유는 이해한다. 이것은 단순한 산업 규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근간에 닿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밖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안의 조율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1113만명의 투자자가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해외 거래소로의 자금 이전 규모는 반기 기준 101조6000억원에 달한다. 신중함과 정체는 다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법안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고 출발하는 결단이다.
‘은행 51% 룰’ 이면에 있는 구조적 딜레마 그리고 미국의 답
법안 교착의 가장 큰 원인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문제다. 한국은행은 은행이 발행 컨소시엄 지분의 51%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화정책 혼란, 인플레이션 위험, 주조이익 등에 대한 우려를 반복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 우려에는 근거가 있다. 은행의 본질적 수익 구조는 예금(수신)→지급준비금→대출이라는 신용창출 기능에 기반한다.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보급되면 은행 예금의 일부가 이동할 수 있고, 수신 기반 약화는 은행 시스템 전체에 부담이 된다. 공식적으로 표명되지는 않지만, 이것이 ‘은행 51% 룰’ 주장의 실질적 배경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우려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험인지, 이제 정량적으로 답이 나왔다.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가 이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이자를 전면 금지해도 은행 대출 증가 효과는 21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전체 은행 대출의 0.02%에 해당한다. 반면 이자 금지로 인한 소비자 복지 손실은 연간 8억달러로 비용이 편익의 6.6배에 달한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을 흡수해 대출이 위축된다’는 수조달러 규모의 우려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현재의 6배로 성장하고, 모든 준비금이 현금으로만 보관되며, 연준이 현행 통화 체계를 포기한다는 세 가지 비현실적 가정이 동시에 충족될 때에만 성립한다.
더 주목할 점이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를 초과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80% 이상이 미국 외 지역에서 발생한다. 해외에서 미국 국채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위협이 아니라 달러 패권을 디지털로 확장하는 전략적 자산인 것이다.
미국은 이 분석을 바탕으로 해법을 설계했다.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는 은행뿐아니라 요건을 충족한 비은행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되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이자를 제공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을 대체하지 못하도록 구조적 안전장치를 둔 것이다. 혁신을 허용하면서도 은행 시스템을 보호하는 양립의 해법이다.
한국은 아직 이에 상응하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은과 금융위, 재정경제부, 국회 각각의 고민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은 이해한다. 그러나 미국은 같은 우려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구조적 해법을 설계해 법제화까지 마쳤다.
우리도 우려에 머무르기보다, 우려를 풀 수 있는 설계를 논의할 때다. 그 사이에 한국 금융권은 이미 총력을 다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상설 조직으로 전환했다. 하나금융은 지방은행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한국투자증권 등은 코인원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코빗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민간은 이미 뛰고 있다. 이제 정부가 출발선을 그어줄 차례다.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 통과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미국 규제 준수를 내세운 USDC(서클)의 시장 점유율이 2024년 말 20%대 초반에서 25%까지 확대됐다. 테더(USDT)는 60%대 초반으로 내려앉았다. 제도권 자금이 투명성이 높은 자산으로 이동한 결과다.
규제가 시장을 형성한다. 규제의 부재는 시장에서의 발언권을 잃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신호는 감지된다. 제도적 공백 속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표준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용자 경험과 유동성은 외부 인프라에 쌓이고 있다. 한 번 자리 잡은 결제·송금 흐름은 규제가 정비된 뒤에도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뒤늦게 등장하는 국내 모델은 ‘선택지’가 아니라 ‘대안 중 하나’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 내부에서도 과제는 발견된다. 현장에서 접한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스테이블코인이 결합된 결제 흐름에 대해 아직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이 현상이 얼마나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규제를 설계하려면 먼저 현장을 알아야 한다. 산업계와 정부가 더 자주 더 깊이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빨리 가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가상자산 규제가 아니다. 디지털금융 질서의 문법을 새로 쓰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AI 산업을 국가 핵심 육성 분야로 투자하고 있지만, AI 에이전트가 실제 경제 활동을 수행하려면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 수단이 필수적이다. 스테이블코인 없이 AI 경제는 완성될 수 없다.
20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야기돼 온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은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한국이 금융허브로서의 지위를 가져갈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가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을 통한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는 당연하고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 우려에 대한 정량적 분석과 구조적 해법이 글로벌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다. 미국 CEA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을 위협한다’는 명제가 현실적 조건에서 거의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고민의 시간이 곧 결정의 시간이어야 한다. 1113만명의 투자자가 기다리고 있다. 규제가 늦어질수록 시장은 더 빠르게 외부 표준에 적응하고 그 표준이 굳어질수록 뒤늦게 등장하는 국내 모델의 설 자리는 줄어든다.
오는 15일 정무위 법안소위가 열린다. 금융당국의 우려를 존중하면서도 글로벌 현실과의 간극을 좁히는 논의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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