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 직원이 현대 측 입찰 제안서 몰래 찍다가 적발 "합의 깬 불법 촬영, 대표이사급 사과 필요" 1조5천억대 경쟁입찰 과정서 초반부터 잡음
서울 강남구 압구정5구역 재건축 조합 사무실./사진=김이슬 기자
한국 최대 부촌으로 꼽히는 압구정 재건축 사업에서 유일하게 시공사 선정이 경쟁입찰로 성사된 5구역이 초반부터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사비 1조5천억원대 압구정5구역의 입찰 제안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불법 촬영 논란이 불거져 자칫 사업이 중단될 뻔했다. 성수와 목동 단지에서 무혈입성 사례가 이어지며 출혈 경쟁을 자제하려는 기조가 뚜렷하지만, 상대가 있는 핵심 사업장은 예외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5구역 재건축 사업 입찰 제안서를 불법 촬영한 DL이앤씨 측에 대표이사급 사과문을 요구했다. 조합이 지난 10일 입찰 당일 늦은 밤 이사회를 연 끝에 입찰 무효 사태로 번지진 않았지만, 합의를 깬 DL이앤씨에 최소한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해당 입찰 참여 관계자는 "사전 동의 없는 불법 촬영을 좌시할 수는 없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압구정5구역 사업 재개를 위해 DL이앤씨 대표이사급 사과문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조합에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상호 비교표 작성을 위한 입찰 제안서 교환이나 촬영은 흔한 일은 아니다. 통상 경쟁이 심한 사업장에서 향후 제안서가 바뀔 염려가 있거나 증빙을 남기고자 할 때 이뤄진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맞붙은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에서도 양사 합의 하에 입찰 서류를 촬영한 적이 있다. 공사비 1조5천억원대 한남4구역 수주전에서는 삼성물산이 최종 시공사로 선정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입찰 제안서에는 사업 성패를 가를 금융 조건과 설계, 마감재 등 수주 성과와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 다수 담겨 있어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현대건설도 압구정5구역 입찰 서류에 날인하기 전 제안서를 교환하거나 촬영하자는 DL이앤씨의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이미 수의계약으로 시공권을 따낸 압구정2구역 제안이 오픈된 상황에서 경쟁입찰이 성사된 5구역 참여 견적서를 공유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DL이앤씨 측은 직원이 몰래 볼펜 카메라로 촬영하다 적발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사측 관계자는 "사전 합의를 어긴 것은 유감이지만, 관할 구청과 조합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미 입찰이 정상적으로 성찰된 후에 벌어진 행위여서 입찰 무효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 홍보 활동을 하고자 한 것도 아니고, 비교표 작성 날인 전 확인 작업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었다"고 항변했다.
현대건설과 DL이앤씨, 조합 측은 모두 사업 지연을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 다만 현대건설은 이번 사태를 책임을 물어 최소한의 사과문은 받아야 사업 재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갈등이 잘 봉합된다면 다음달 16일 합동설명회와 30일 시공사 선정 총회는 순차적으로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압구정5구역은 한양 1·2차를 68층 랜드마크로 조성하는 사업으로 공사비는 1조 5000억원 수준이다. 3.3㎡ 기준으로 1240만원이 책정돼 인접한 2구역(1150만원)과 3구역(약 1120만원)보다 사업성이 좋다는 평가다.
5구역과 같은 날 입찰 마감한 3구역은 현대건설이 단독 응찰해 유찰됐다. 2회 연속 유찰 시 수의계약을 할 수 있어 무혈입성이 가능해진다. 4구역은 삼성물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하고 5월 말 시공사 선정 총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