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사진 본 AI가 “바닥 미끄럼, 화학물질 누출 위험” 콕 짚었다

이주현 기자 2026. 4. 1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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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미래일자리포럼서 만난 ‘AX 현장’
사업장 300만개 전수감독 불가능
머신러닝으로 위험 사업장 추출
34개 언어로 AI 노동법 상담도
현직 공무원, 오픈소스로 개발
“노동법이 절실한 이들 위한 행정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길 찾는다”
“안 뚜안(가명)의 입사일·퇴사일, 퇴직 전 급여를 적었더니 인공지능이 계산을 해줬어요. 노무사가 직접 계산한 것과 딱 10원 차이가 나더라고요.”

경기도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에서 베트남어 통역사로 일하는 김민경씨는 지난 9일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AI 노동법 상담’을 베트남어로 이용해봤다. 세무사들도 놓치기 쉬운 출국만기보험 환급금도 포함해 계산했더니 정확한 숫자가 나왔다. 34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꽤 유용할 듯했다. 하지만 퇴직금 산정시 꼭 챙겨봐야 할 사업주의 연금 납부 체불 문제를 물었더니 에이아이는 답하지 못했다. 왕희애 사무국장은 “에이아이 상담사가 아직은 노동부 외 다른 부처·기관에서 다루는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 같지만 센터에 직접 오실 수 없는 분들이 이용하면 좋겠다 싶어 에이아이 상담 데이터를 좀 쌓아보자고 했다”고 했다. 그는 “보다 포괄적인 노무상담이 가능하도록 원스톱 서비스까지 구축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에이아이를 활용한 업무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노동법 상담 서비스’는 지난해 조직 개편 등을 거치며 에이아이 전환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성과물 중 하나다. 여러가지 에이아이 프로젝트 가운데 노동부가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씻기 위한 예방 시스템이다. ‘산재 위험 자율점검 에이아이’ ‘산재 고위험 사업장 선정 지원 에이아이’ 등이다. ‘자율점검 에이아이’는 사업장 사진을 입력하면 이미지 분석을 통해 위험 요소들을 알려주는 모델이다. 7일 노동부 발표에서 등장한 사례를 보면, 에이아이는 공장 사진을 보고 톱날 보호 덮개가 없는 테이블 톱의 위험성, 집진 설비 미흡, 난청성 소음 우려 등을 짚으며 푸쉬 스틱 의무화 등 시정조치 목록을 작성했다. 지난달 화재로 14명의 노동자가 희생된 대전 안전공업에도 적용해봤더니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된 문제들이 지적됐다. 에스비에스(SBS)가 입수·보도한 지난해 공장 내부 사진 1장을 올리자 ‘식별된 위험요소’ ‘점검 항목’ 목록이 뜨며 “이 작업장은 바닥의 미끄럼, 화학물질 누출, 전기 안전 취약 등 복합적 위험이 매우 높은 환경이다. 즉시 개선조치가 요구된다”는 답이 나왔다.
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APEC 미래일자리 포럼’에서 박보현 고용노동부 인공지능혁신과장이 발표하고 있다. 노동부 제공

한국에는 300만개의 사업장이 있는데 산업안전감독관은 1400여명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정부는 감독관 숫자를 5000명까지 단계적으로 증원할 계획이지만, 수백만 개 현장을 챙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재 예방에 효율성을 높이려면 고위험 사업장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감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위험 사업장 선정 에이아이’는 오픈소스 코드로 기계학습 머신러닝 모델을 만들고, 여기에 업종·규모·지역·산업재해 발생 및 보험신청 기록·위험한 기계 또는 화학물질 보유 현황 등 각종 데이터를 입력해 위험 사업장을 추출해내는 방식이다. 이전엔 사람이 엑셀을 활용해 데이터 필터링을 하고 현장 위험 수준 평가 등을 추가해 관리 대상 사업장을 뽑았는데, 인공지능은 인간이 파악하지 못한 수백가지 숨겨진 패턴을 찾아냈다. 노동부는 인공지능이 이 과정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노동부 전 직원에게 배포된 ‘노동감독 에이아이 비서’는 챗지피티 같은 생성형인공지능을 노동부 내부망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다. 노동부가 축적한 광범한 데이터베이스 활용이 가장 큰 강점으로, 근로감독관들을 위한 조사설계·진술조서 작성 및 교차검증·보고서 작성 등에 특화돼 있다.

노동부가 이처럼 인공지능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데엔 박보현 인공지능혁신과장의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카이스트 출신으로 지난 2013년 사무관(재경직)으로 임용됐다. 박 과장은 노동부에서 일하면서 영세 사업장 직원이나 이제 막 취직한 청년처럼 노동법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일수록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처음 나왔을 때 ‘아, 이거 잘 사용하면 굉장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오픈소스로 코드를 짜 AI 상담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직접 해보니 인공지능을 활용해 노동부 행정의 숙원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담 부서를 만들자고 열심히 주장했고 결국 실현됐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에이아이 행정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개인정보가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될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에이아이 노동상담 서비스에서 로그인 기능을 없애고,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인 당근 마켓 ‘알바’ 코너에도 노동법 상담 기능을 넣었다.

박 과장은 “정부는 엄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형평성 있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효율성이나 신속한 대응을 하기엔 상당히 어렵고 규제도 많다. 예산 문제로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고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공무원들이 이런 오픈소스 도구를 활용하면 직접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많은 인력과 예산을 들일 수 없는 정부에 에이아이가 큰 길을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이주현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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