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이 아이 키웠다…이젠 어르신 돌봄으로”

신효진 기자 2026. 4. 1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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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멈춰 선 마을 돌봄
마을 빈 공간을 돌봄의 중심으로
사는 곳 가까이에서 서로 돌봄으로
마을이 다시 만들어낸 돌봄의 길
지난해 10월25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악마을공간 해유’ 마당에서 열린 ‘송악마을예술제’에서 지역 주민과 학생, 학부모들이 야외 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과 송악마을교육네트워크 오늘이 공동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700여명이 참여했다.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 제공.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왜 안 보여?” 물으면 돌아오는 말이 “요양병원에 가셨대”였다. 불편한 몸을 함께 의지하던 어르신들의 보금자리인 마을회관이 코로나로 문을 닫자, 갈 곳을 잃은 어르신들이 하나둘 요양시설로 향한 것이다. 3월24일 송악마을에서 만난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의 유채영 이사장은 당시를 되짚으며 말했다. “코로나가 또 오면 우리도 요양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죠. 가능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바람 아니겠어요?”

그 질문이 출발점이 됐다. ‘송악동네사람들’은 어르신들의 생활 실태와 필요를 살피는 조사부터 시작했다. 돌봄 활동가를 직접 길러내고, 동네 마을회관의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어르신 인생학교’를 열었다. 외부에서 오는 강사들을 대신해, 마을 이웃들이 직접 강사로 나섰다. 송악면의 마을 돌봄은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유 이사장은 회고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 먼저였다

유채영 이사장이 송악면을 처음 찾은 것은 2012년이다. 자녀 교육을 계기로 왔지만, 학부모 모임부터 시작해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정주하게 됐다. 같은 해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마을 안에서 협동조합 설립 이야기가 나왔다. 외부 강사를 초대해 공부도 시작했지만,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준비위원회만 꾸린 채 3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매달 모임을 이어가며 작은 마을 사업을 함께 도모했다. 협동조합 공부보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3년 동안 서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서로의 이야기를 더 나누는 시간이 된 셈”이라고 유 이사장은 말했다. 당장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을 아는 일이 먼저였다. 그렇게 다져진 관계 위에 마침내 2016년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이 만들어졌다.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설립 당시 33명이었던 조합원은 이제 127명에 이른다.

공간이 성장의 힘이 됐다. 협동조합의 거점인 ‘송악마을공간 해유(이하 해유)’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 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완공 뒤 1년간 운영 주체를 찾지 못해 비어 있던 건물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초창기엔 오해도 있었다. 유 이사장은 “건물이 훌륭하잖아요. 그러니 그 안에서 일하는 것도 시에서 다 지원받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송악동네사람들은 활동을 통해 마을 주민들의 오해를 바꿔나갔다. 농촌 곳곳에 거점 공간이 세워지지만, 공간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송악마을이 달랐던 건 공간이 생기기 전부터 마을 교육을 중심으로 주민들과 관계를 쌓아왔다는 것이다. 주민들과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 돌봄 활동이 마을 공유 공간인 ‘해유’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의 거점인 ‘송악마을공간 해유’에는 커뮤니티 카페 ‘놀다가게’,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숍, ‘반딧불이지역아동센터’가 둥지를 틀고 있다. ‘해유’는 ‘사랑해유 함께해유’라는 슬로건을 통해 지역 주민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이 키운 아이가 마을로 돌아왔다

해유 2층에는 ‘반딧불이지역아동센터(이하 반디)’가 있다. 외환위기(1997년) 이후 조손가정이 넘쳐나던 시절, 마을 주민 두 명이 수입 좋은 과외를 그만두고 시작한 돌봄 공부방에서 반디가 비롯됐다. 박보연씨(31)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 센터를 다녔다. “반디는 저에게 언제든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송악마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동급생들이 12년을 함께 친구로 지낼 만큼 작은 마을이다. 고등학교가 없어 시내에서 학교를 다닌 박 씨는 큰 학교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수록 마을이 그리워졌다. 고3 때 반디 청소년 동아리에서 떠난 자전거 여행에서 선생님에게 진로 고민을 털어놓자 “반디에서 일해보는 건 어때?”라는 말이 돌아왔다. 박 씨는 큰 망설임 없이 좋다고 답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센터로 돌아왔다. 교사가 된 지금, 마을이 다르게 보인다. 박 씨는 “학생일 때는 즐기고 참여만 했었다면, 지금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하면서 마을에서 하는 일들이 혼자서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많은 사람이 조금씩 힘을 보태서 재미있는 마을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달라진 마을살이를 이야기했다.

마을이 아이를 돌봤던 방식이 이번엔 어르신으로 향했다. 어르신들이 고립된 채 요양시설로 향하는 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닥칠 우리의 문제’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함께 키우며 쌓아온 신뢰가 어르신 돌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돌봄은 교육과 달랐다.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닿지 않는 곳이 있었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사정을 알고, 마을 안쪽의 기존 조직들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골짜기 마을 어르신을 찾아간 6년

홍찬숙 돌봄위원회 위원장이 연결고리가 됐다. 지역 토박이인 남편과 함께 마을살이를 하며 부녀회장으로,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역할을 해온 홍 위원장은 2019년 퇴직 후 본격적으로 돌봄 활동에 뛰어들었다. “6년 동안 활동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했어요.” 양성된 활동가들은 2인 1조로 어르신 가정을 직접 방문했다. 팀당 스무 명의 어르신을 돌봤고, 활동이 늘어나면서 한때 이들이 돌본 어르신이 7~80명에 이르기도 했다. 돌봄 활동가들은 어르신 가정을 찾아가는 한편, 마을회관으로도 향했다. 송악면에는 복지관이 없다. 골짜기 마을마다 흩어진 어르신들에게 마을회관은 유일한 사랑방이었다. 마을회관마다 찾아가 어르신 인생학교를 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심리미술치료, 푸드테라피, 건강체조 등으로 꾸린 8회짜리 교육 과정이 마을마다 열렸다.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심리 상태를 살피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홍 위원장은 “똑같은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컨텐츠 전달에 목적을 둔 외부 프로그램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송악동네사람들의 운영은 늘 빠듯하다. 유채영 이사장은 “교육, 돌봄, 자원순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한 운영 경비가 항상 부족한 형편”이라며 “안정적인 마을 활동가를 길러내기에 항상 허덕인다”고 토로했다. 2022년 아산시 지원으로 처음 해유의 공간 운영비를 받았을 때 숨통이 트였지만, 이듬해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지원도 끊겼다. 유 이사장은 “(사업이) 잘 돌아가면 크게 하고, 안 돌아가면 정말 작게 하고, 그렇게 10년을 버텼어요. 어느 해엔 상황이 나아지기도 하고, 또 어느 해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더라고요. 이게 마을이다 싶어요”라며 담담히 웃었다.

정부는 2022년부터 2031년까지 매년 1조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역에 배분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기존 하드웨어(시설) 중심 투자에서 주거·일자리·돌봄 등 소프트웨어 사업 중심으로 기금 집행을 전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마을에서 직접 이웃을 돌보는 사람을 키우는 일은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는 곳 가까이에서 서로돌봄으로 노년이 행복한 마을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은 마을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어르신 인생학교’에서는 심리미술, 건강체조, 푸드테라피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된다.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 제공.

다음 세대가 동네 주인이 되어야

10년을 버텨온 송악동네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40대에 송악을 찾아 마을교육을 함께 일군 사람들이 이제 50~60대에 접어들고 있다. 유 이사장은 “마을 전체가 살려면 다음 세대가 동네 주인이 되어야 해요. 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한다. 박보연씨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힘들었던 시기, 특히 고등학교 때 자연스럽게 마을(반디)이 떠올랐어요. 선생님들께 받았던 도움과 기억이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이곳이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자라서 힘이 들 때 언제든 편하게 떠올릴 수 있고, 그 기억이 힘이 될 수 있는 공간이요.”
매년 가을 열리는 ‘송악마을예술제’는 학생들의 연주, 학부모 밴드, 송악마을극단의 연극 등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는 공연으로 채워진다.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 제공.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jinny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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