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함께 못한 단종과 정순왕후…보랏빛 들꽃이 잇다

최수문 선임기자 2026. 4.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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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11일 사릉의 들꽃, 장릉에 옮겨심기 행사
종묘 등 관련 유적지 잇는 다양한 여행 코스 개발하기로
국가 의례와 실질 효과 등으로 두 사람 합장은 곤란해
정순왕후의 보라빛 ‘그리움’, BTS 보라빛과 연결 의미도
허민(왼쪽) 국가유산청장이 11일 남양주 사릉 고유제의 초헌관 복장으로 안호 궁능유적본부장 직무대리와 함께 장릉에 옮겨 심을 6종의 들꽃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를 상징하는 자주색(보라빛) 꽃을 피울 예정이다. 최수문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을 통해 최근 제기된 단종의 영월 ‘장릉(莊陵)’과 정순왕후의 남양주 ‘사릉(思陵)’ 합장 문제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국가유산청이 밝혔다. 대신 두 능과 지역을 연결하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겠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11일 경기도 남양주 사릉 내의 전통수목양묘장에서 재배한 꽃을 강원도 영월 장릉으로 옮겨심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남양주 사릉에서 고유제를 마친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안호 궁능유적본부장 직무대리가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안호 직무대리는 “합장은 곤란한 부분이 있다. 이미 (장릉과 사릉이 왕릉으로 조성된) 숙종 때 논의가 있었다고 하는데 국가 의례의 엄중함와 당시 경제적 상황을 감안해 (두 곳에 그대로 두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장보다는 지금처럼 있으면서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지역민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행사도 그런 ‘스토리’의 취지라는 것이다 안호 직무대리는 “장순왕후가 묻혀 있는 사릉의 꽃을 장릉에 심어드리면서 두 분의 사랑과 그리움을 꽃으로 이어주려고 한다”며 “오는 7~8월 장릉과 사릉의 잔디 씨를 채취해 사릉 내에 있는 전통수목양묘장에서 키우고 이를 이듬해 한식 때 이를 각 능에 서로 바꿔 덮을 예정이다. 합장 못하는 아쉬움을 서로 이불을 덮어주듯하는 행사도 매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릉과 장릉을 연결하는 행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재 장릉의 능침 앞에는 지난 1999년 사릉에서 옮겨심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령송(精靈松)’이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있다. 이번에는 여기에 들꽃까지 더하겠다는 의미다.

더불어 국가유산청은 조선왕릉 전체 40기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이들이 완결성을 갖고 등재돼 있고 능이 하나 없어지면 완결성 부분이 훼손된다는 것도 합장이 불가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안호 직무대리는 “(합장 추진을) 두 지역에서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민(왼쪽 네번째) 국가유산청장이 11일 오후 영월 장릉에서 전주이씨대동종약원 관계자들과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최수문기자

대신 남양주와 영월을 잇는 다양한 문화 및 관광 행사를 활발히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안호 직무대리는 “단종과 정순왕후를 잇는 다양한 여행 코스를 계획하고 있다. 코스는 영월과 남양주, 종묘 등을 포함하는 코스를 개발중”이라며 “그밖에도 여러가지 장릉과 사릉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는 여러 행사들을 궁중문화축전 전후로 해서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세계유산 조선왕릉에 대해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영상과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 할 수 없는 애뜻한 이야기, 서사, 그들이 갖고 있는 행적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함께 하면서 K헤리티지, 한국의 고유한 국가유산과 예절을 나누려고 한다”고 말했다.

11일 남양주 사릉의 정자각에서 고유제가 진행중이다. 왼쪽 위가 사릉 능침이다. 최수문기자

11일 행사는 경기도 남양주 사릉에서 먼저 진행됐다. 이날 오전 정순왕후가 묻힌 사릉에서 열린 고유제(告由祭)에는 허민 청장이 초헌관(제사를 지낼 때 첫 번째로 술을 올리는 제관)을 맡았다. 고유제에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장·사릉봉향회, 장릉제례보존회 등도 참여했다. 고유제에서 허 청장은 “단종과 정순왕후 두 분의 백이 각각 따로 모셔져 있서 승하 후 5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두 분의 그리움을 꽃으로 이어지게 하려 합니다”고 고했다.

이어 사릉 내에 소재한 전통수목양묘장에서 재배한 맥문동, 구절초, 벌개미취, 비비추, 쑥부쟁이, 층꽃 등 6종을 담았다. 이들은 모두 꽃이 자주색이라는 특징이 있다. 최근 컴백한 방탄소년단(BTS)와 연결했다는 말도 나왔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취지다.

물론 이들 들꽃이 직접적으로 정순왕후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정순왕후는 단종이 폐위되고 자신도 궁에서 쫓겨난 후 어렵게 살았는데 옷감을 자주색(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살던 서울 종로 창신동에는 ‘자지동천’(紫芝洞泉·샘)이 남아있기도 하다.

11일 오후 영월 장릉의 정자각에서 고유제가 진행중이다. 왼쪽 위가 장릉 능침이다. 최수문기자

행사는 11일 오후 강원도 영월로 옮겨졌다. 단종이 묻힌 장릉에서도 고유제를 지냈고 초헌관은 안호 궁능유적본부장 직무대리가 맡았다. 그는 “드디어 정순왕후의 사릉에서 자란 꽃들을 단종의 장릉 능침 앞에 심은 후 정결하게 제사의 예를 갖추었습니다”고 말했다.

고유제에 앞서 꽃 옮겨 심기 행사가 열렸다. 장릉 능침 앞에는 앞서 1999년 사릉에서 가져온 소나무 2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이날 그 주위에 사릉에서 가져온 들꽃을 심었다.

허민 청장 등 참여자들이 직접 호미를 들고 옮겨 심었다. 허민 청장은 “들꽃은 모진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간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며 “‘왕사남’ 뿐만 아니라 BTS 아미의 색깔과 같다는 것도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허민(왼쪽) 국가유산청장이 11일 오후 영월 장릉에서 남양주 사릉으로부터 가져온 구절초를 옮겨 심기하고 있다. 최수문기자
11일 오후 영월 장릉의 능침 인근 ‘정령송’ 소나무 아래에 사릉에서 옮겨 심은 들꽃들이 자라고 있다. 정령송은 앞서 1999년 역시 사릉에서 옮겨온 것이다. 최수문기자

한편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은 삼촌인 세조(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폐위된 후 영월로 옮겨졌고 이곳에서 1457년 사망했다. 부인인 정순왕후도 역시 궁에서 쫓겨난 후 지금의 서울 낙산 근처에서 살다가 1521년 사망했다.

이들의 사망 후 100여 년이 지난 조선 숙종 때인 1698년 ‘국왕’으로 복위되고 무덤도 왕릉으로 승격했다. 다만 능은 해당 지역에 그대로 두고, 신주(神主)만 종묘에 함께 모셨다. 종묘에서도 정전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영녕전에 머무르고 있다.

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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