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손쓸 일, 1명이서 해결”… 제조혁신 이끄는 ‘이 기술’
기아(000270)가 2024년 8월 전기차 생산 공장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도입한 후 설비 유지 보수에 드는 노동량을 연간 3750시간 절감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업무 혁신은 공장 설비의 정상 작동 여부와 이상 현상을 컴퓨터 가상공간에서 실시간 관제하면서 이뤄낸 결과다.
12일 서울경제신문이 확보한 현대차(005380)그룹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광명의 기아 ‘광명 EVO 플랜트’에서 차체 생산라인 유지 보수 업무에 필요한 작업 공수(工數)가 디지털 트윈 구축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공수란 작업 물량을 전체 노동시간으로 변환한 단위다. 제조 업계에서 노동량과 인건비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기존에 차체 생산라인 내 설비 오작동 발생 시 이를 조치하는 데 평균 근로자 4명에 350분의 공수가 필요했다. 반면 광명 EVO 플랜트의 경우 오류 한 건을 해결하는 데 근로자 4명에 100분의 공수면 충분했다. 기아는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해 동안 광명 EVO 플랜트 설비 오작동을 해결하는 데 공수 3750시간이 절감됐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한 해 발생하는 설비 오작동 건수를 900건으로 상정한 뒤 오작동 한 건을 조치하는 과정에서 절약된 공수(250분)를 곱한 수치다. 기아 입장에서는 한 해 설비를 정상화하는 데 들이는 노동력을 3750시간만큼 줄이고 근로자들을 다른 업무에 투입할 여력을 얻은 셈이다.
광명 EVO 플랜트의 업무 효율 개선은 디지털 트윈의 제조업 적용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디지털 트윈이란 현실의 사물과 공간을 컴퓨터상에 쌍둥이처럼 데이터로 변환해 옮긴 기술을 뜻한다. 기아의 경우 실제 생산 설비의 오작동 여부와 이상 현상을 컴퓨터 가상공간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유지 보수 업무의 효율화를 도모했다. 광명 EVO 플랜트의 디지털 트윈 구축은 현대차그룹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307950)가 맡았다.

비단 기아뿐만 아니라 반도체·철강 분야의 국내 주요 제조 업체들도 잇따라 디지털 트윈을 도입하는 등 디지털 트윈은 인공지능(AI), 로봇과 함께 제조 혁신의 필수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제조 업계는 실시간 데이터 연동과 가상 예측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업무 설계가 공정 전반의 효율 개선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업 효율화를 가능케 하는 두 축은 실시간 데이터 연동과 시뮬레이션이다. 실제 설비와 가상공간 사이 실시간 데이터 연동은 근로자들의 공간 제약을 해소한다. 이는 작업장 관리 및 제어 업무에서 원격 협업의 질을 높인다. 더 나아가 시뮬레이션은 사전 조치로 효율 개선을 도모하는 핵심 기능이다. 가상공간에서 기물과 설비 배치를 변경하며 환경 변화에 따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 덕에 기업들은 가상공간 내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업무 최적화 설계를 구상할 방법이 생겼다.
기아 광명 EVO 플랜트의 디지털 트윈 통합 관제 시스템은 실시간 데이터 연동에 초점을 맞춘 사례다. 기아와 현대오토에버는 광명 EVO 플랜트에 ‘블랙박스’와 ‘웹 RTC(실시간 통신)’ 기술을 도입했다. 블랙박스는 디지털 기록 시스템의 일종이다. 공장 환경에서 특이 사항이 발생하면 실제 환경 데이터가 실시간 연동되는 컴퓨터 가상 환경에 이상 상황이 보고된다. 공장 작업자들은 이 블랙박스 기록을 점검하며 문제가 발생한 시점과 정확한 고장 부품을 확인할 수 있다. 차량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해가며 교통사고의 원인을 파악하듯 디지털 트윈 기록을 영상물로 확인하고 오작동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다.
웹 RTC는 블랙박스 등 디지털 트윈 관제 시스템을 웹 환경에서 볼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보통 산업용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사양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가 직접 연결된 컴퓨터를 이용해야 했다. 반면 웹 RTC는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을 웹 환경에서 구현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다양한 기기로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다중 접속 시스템이 마련됐다. 이 덕에 서로 멀리 떨어진 작업자들이 같은 가상공간 데이터를 공유하며 협업하는 업무 환경이 조성됐다.
블랙박스와 웹 RTC는 업무 효율 개선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설비 오작동 신고 접수, 이상 현상 파악, 트러블 슈팅(문제 해결)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특히 오작동 발생 후 초기 대응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현대차그룹 자료에 따르면 기존에는 이상 현상 파악에만 근로자 4명이 30분가량 달라붙어야 했다. 이를 공수로 계산하면 120분의 공수가 투입됐다. 반면 기아 EVO 플랜트의 경우 근로자 1명이 10분을 들여 이상 현상 파악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투입 공수를 놓고 비교하면 120분에서 10분으로 감소한 셈이다.

기아 외에도 시뮬레이션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현대제철(004020)은 현대오토에버와 함께 냉연 공장 가스 유출 사고가 발생할 시 대응하는 디지털 트윈 관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근로자·설비·작업장을 하나의 가상공간 플랫폼에서 관리해 안전을 도모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 플랫폼에서는 작업장 내 배치된 가스 감지 센서의 데이터를 가상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유해가스 유출 시 사고 발원지를 추적하는 기능을 포함할 예정이다. 디지털 트윈상 가스 확산 경로 시뮬레이션 기능도 개발 중인데 이는 2차 사고 예방에 필요한 의사 결정을 돕는 데 쓰인다.
이 외에도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디지털 트윈 혁신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옴니버스’를 활용해 가상공간에서 반도체 생산 설비의 실시간 이상을 감지하고 생산 일정을 최적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옴니버스 기반 가상 반도체 공장을 만들어 생산 흐름과 자재 이동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 도입 열풍은 기업 간 데이터 확보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트윈 전문가들이 꼽은 제조 혁신의 선결 조건은 현장 데이터(그라운드 트루스 데이터)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집합(골든 데이터 세트)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업장에 소형 컴퓨터를 부착해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가운데 고품질의 데이터를 추출하는 작업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 디지털 트윈 플랫폼 개발사 대표는 “결국 디지털 트윈을 쓰려는 이유는 시뮬레이션 예측에서 정답을 찾기 위함”이라며 “정답에 가까운 시뮬레이션 결과 값을 얻으려면 현장의 데이터 중 가장 정제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필수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te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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