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보다 '어디에'…은행 핵심평가지표 판 뒤집혔다

강한빛 기자 2026. 4.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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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상생·포용 금융 ESG 어워드②]
금융당국 생산적금융 '실질적 작동' 강조
금융권 KPI·보상 등 체계 전면 재편
[편집자주] 금융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부동산과 자산시장으로 쏠렸던 자금 흐름을 실물경제와 혁신 산업으로 돌려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금융이 자산 가격을 떠받치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과 산업 경쟁력 제고, 취약계층 지원을 뒷받침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확산하는 흐름이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생산·상생·포용 금융 ESG 어워드'를 개최한다. 금융이 산업과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그 전환의 방향과 과제를 짚어본다.

그래픽=클립아트코리아
금융권 핵심성과지표(KPI) 판이 바뀌고 있다. 영업수익, 자산규모 등 손익지표에 치우쳤던 평가 체계가 생산적 금융과 포용 금융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은행의 역할이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따지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표 개선을 넘어 조직·인력 운용이 실제 의사결정에 어떻게 작동하는지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은행권은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그간 1000점 만점으로 운영되던 KPI의 핵심축을 양적 지표에서 질적 구성으로 대폭 전환했다. 기존 평가 방식이 대출 자산 규모나 비이자이익 등 외형 확대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어떤 기업에 자금을 공급했는가'를 가르는 생산적 금융 지표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일부 금융지주는 생산적 금융 관련 지표 비중을 최대 30% 수준까지 확대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적 쌓기용 대출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발굴하고 자금을 수혈하는 등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정책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금융위는 올해 초 '생산적 금융 협의체'를 가동하며 생산적 금융이 일부 부서나 담당자의 과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목표로 내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지표 개선 여부뿐만 아니라 실제 조직 구성, 보상체계, 인사 운영 등이 생산적 금융이라는 목표에 맞게 작동하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즉, 형식적인 수치 맞추기가 아니라 은행의 DNA 자체를 생산적 금융에 맞게 재설계하라는 주문이다.

생산적 금융 확대가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실패하면 책임진다'는 문화를 먼저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금융업권 생산적금융 협의체'에 참석해 "금융사별로 생산적 금융 손실에 대한 과감한 면책이나 인사 불이익 제거를 검토하고, 정부 차원의 면책이 필요한 경우 구체적으로 건의해 달라"고 밝혔다.

혁신기업과 전략산업 지원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수반하는 만큼 면책 장치 없이는 현장의 자금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5대 금융, KPI 바꿔 생산적 금융 경쟁


이같은 기조 변화는 최근 여신 흐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국내 금융을 이끄는 5대 지주사들은 일제히 생산적 금융 관련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파격적인 성과평가안을 내놓으며 화답하는 모양새다.

지난 2월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778조2000억원으로 전월대비 6조8000억원 증가한 반면, 가계대출 잔액은 690조3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1조2000억원 감소하며 대조를 이뤘다.

먼저 KB금융은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을 기준으로 산업 분류 체계를 다시 쓰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은 생산적 금융 관련 별도 KPI를 신설하고 영업점 평가 전반에 우대 기준을 적용했다.

신한금융은 진옥동 회장이 직접 '생산적 금융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무게감을 더했다. 생산적 금융을 그룹 핵심 전략과제로 명시하고 지주 내 사무국과 자회사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특히 영업점 KPI에 생산적 금융 지원 실적을 최대 21.9%까지 반영하는 파격적인 조치도 단행했다.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이 주재하는 '첨단전략산업금융 협의회'를 통해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 전략 자산에 대한 금융 지원 현황을 매달 점검한다. 자회사별 성과평가에는 관련 배점을 최대 30%까지 반영하고, 첨단전략산업 및 생태계 여신 지원 시 KPI 우대를 적용해 전 그룹 차원의 참여를 유도한다.

하나금융은 현장의 동기부여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른바 '코어(Core) 첨단 업종'을 설정하고, 해당 기업에 신규 여신을 취급할 경우 영업점 KPI 가중치를 120% 우대한다. 현장 영업 직원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실질적 유인책을 마련한 것이다.

NH농협금융은 이찬우 회장의 지휘 아래 혁신 아이디어의 사업화와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연계하고 있다. 농업 금융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KPI 반영률을 높여 조직의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의 변화는 단순히 숫자를 바꾸는 게 아닌 은행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라며 "가계대출과 담보 중심 영업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과 미래 성장동력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자금 흐름을 바꾸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강한빛 기자 onelight92@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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