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창시자, 110조 원 보유한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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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지난 4월 8일, 전 세계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한 편의 탐사보도가 떨어졌다. 뉴욕타임스(NYT)가 무려 1만 2,000단어 분량의 기사를 통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의 정체가 영국 암호학자 아담 백(Adam Back)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사를 쓴 존 캐리루(John Carreyrou)는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 사건인 테라노스(Theranos) 스캔들을 파헤쳐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의 대가다. 그가 1년을 매달려 완성한 기사였다.

가상자산 업계 밖에서는 술렁임이 컸다. '드디어 찾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냉담했다. '또 그 얘기냐'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비트코인 가격도 침묵했다. NYT 기사가 공개된 당일 7만 1,900달러였던 비트코인은 이틀 뒤에도 7만 1,400달러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비트코인 전체 공급량의 5%에 해당하는 110만 개 코인의 주인이 지목되는 초대형 특종 보도에도 시장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셈이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커뮤니티는 이미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는 등장한 이래 한 번도 자신의 코인을 옮긴 적이 없다. 진짜 사토시를 증명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초창기 지갑의 개인 키(private key)로 서명을 남기는 것뿐이다. 그 이외의 어떤 증거도 정황에 불과하다. 17년간 수십 명이 지목되고 수십 개의 '유력한 증거'가 제시됐지만 단 한 명도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NYT, 13만 4,000개 게시글과 문체 분석으로 추적
그렇다고 이번 NYT 보도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어렵다. 방법론이 이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2024년 HBO 다큐멘터리 '머니 일렉트릭(Money Electric)'에서 아담 백이 자신의 이름이 사토시의 후보로 거론되는 순간 눈에 띄게 긴장하는 장면을 보고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NYT AI 프로젝트 편집자 딜런 프리드먼(Dylan Freedman)과 손을 잡고 사이퍼펑크(Cypherpunks), 크립토그래피(Cryptography), 해시캐시(Hashcash) 세 개 메일링리스트의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아카이브, 총 13만 4,000여 건의 게시글을 수집해 사토시의 글과 대조했다. 이곳들은 1990~2000년대 암호학자·개발자들이 이메일로 토론하던 온라인 커뮤니티다. 요즘으로 치면 특정 전문가들의 단체 이메일방으로 볼수 있다.
핵심 무기는 문체 분석학(stylometry)이었다. 캐리루 팀이 사토시 글에서 포착한 특이점들은 꽤 구체적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공백 두 칸(요즘 세대는 쓰지 않는 타자기 시대의 습관), 문장 끝에 'also'를 붙이는 버릇, 영국식 철자와 미국식 철자를 오가는 혼용 패턴('e-mail'과 'email', 'cheque'와 'check', 'optimise'와 'optimize'를 번갈아 사용), 하이픈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의 일관되지 않은 패턴 등이다. 3만 4,000명 이상의 후보군에서 이 조건들을 하나씩 적용해 걸러낸 끝에 최종적으로 단 한 명이 남았다. 아담 백이었다.

아담 백은 단순히 글쓰기 습관만 겹치는 게 아니다. 비트코인 채굴의 핵심 원리인 작업증명(Proof-of-Work) 시스템의 전신, '해시캐시(Hashcash)'를 발명한 인물이 바로 그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백서에서 해시캐시를 직접 인용했다. 더 흥미로운 정황도 있다. 전자화폐 논의가 활발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내내 메일링리스트에서 가장 목소리가 컸던 백은, 정작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2008~2011년에는 이 주제에 대해 거의 침묵했다. 사토시가 무대 뒤로 사라진 2011년 이후에야 비트코인에 대해 공개 발언을 재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캐리루의 주장에는 큰 구멍이 있다. 사토시가 2008년 백서 발표 직전 아담 백에게 '당신의 해시캐시 논문을 인용해도 되겠냐'고 이메일을 보낸 기록이 법정에서 공개된 바 있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다른 인물이라는 뜻이다. 캐리루는 '백이 위장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블록체인 보안 전문가 제임슨 롭(Jameson Lopp)은 "문체 분석으로 사토시를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아담 백 본인도 X(구 트위터)에 "나는 사토시가 아니다"라고 공개 부인했다. 포춘(Fortune)은 반박 기사에서 "동일한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이런 무리한 가설이 필요 없는 더 설득력 있는 후보가 있다"며 닉 사보(Nick Szabo)를 지목했다.
용의자 파일: 지금까지 지목된 얼굴들
사실 사토시 후보는 아담 백만이 아니다. 17년간 100명이 넘는 이름이 거론됐다. 그중 커뮤니티 안팎에서 꾸준히 유력 후보로 논의되어온 인물들이 있다.

닉 사보(Nick Szabo)는 많은 암호학자들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는 이름이다. 1998년 비트코인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 전자화폐 개념인 '비트 골드(Bit Gold)'를 설계했고, 2014년 애스턴대학교(Aston University)의 언어학 연구에서 비트코인 백서와 가장 높은 문체 일치율을 보인 인물이다. 컴퓨터 과학자이자 법학자로서 '제3자 신뢰 배제'라는 세계관이 사토시 백서의 핵심 원칙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니셜 N.S.가 사토시 나카모토(S.N.)의 역순이라는 점도 자주 회자된다.
다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웨이 다이(Wei Dai)가 1998년 제안한 b-money는 중앙기관 없이 분산 네트워크에서 운영되는 전자화폐 개념이다. b-money는 사토시가 비트코인 백서에 직접 인용할 만큼 비트코인의 이론적 뿌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토시는 백서 발표 직전 웨이 다이에게 "당신의 b-money를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취지로 연락했다. 사이퍼펑크 커뮤니티의 핵심 논의에 직접 참여했던 사보가 사토시라면, b-money 존재를 몰랐다는 건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b-money의 창시자인 웨이 다이 본인이 "사보가 사토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직접 밝혔다는 점도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할 피니(Hal Finney)는 코인 커뮤니티 내 각종 비공식 투표에서 종종 1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사토시로부터 역사상 최초의 비트코인 전송을 받은 수신자이자, 1990년대에 이미 '재사용 가능 작업증명(Reusable Proof-of-Work)'을 개발했던 세계 정상급 암호학자다. 1993년에 이미 비트코인의 핵심 원리를 서술한 글도 남아 있다.
게다가 할 피니는 '나카모토'라는 성을 가진 실존 인물 도리안 나카모토와 동네 몇 블록 거리에 살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나 결정적인 반론이 있다. 2009년 4월, 피니가 산타바바라에서 10마일 레이스를 뛰는 동안 사토시는 다른 곳에서 이메일을 보내고 비트코인 트랜잭션을 실행한 온체인 기록이 존재한다. 물리적인 알리바이인 셈이다. 피니는 2014년 루게릭병(ALS)으로 세상을 떠났다.
렌 사사먼(Len Sassaman)은 2011년 타계한 사이퍼펑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사망 시점이 사토시의 마지막 활동 시기와 겹친다는 점 때문에 꾸준히 거론된다.
피터 토드(Peter Todd)는 HBO 다큐 '머니 일렉트릭'이 지목한 인물이지만, 백서 공개 당시 그의 나이가 23세에 불과했다는 점과 해당 시기의 알리바이 사진들이 공개되며 설득력을 잃었다. 이 밖에 사토시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의 협업이라는 '복수 인물설'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비밀을 공유하는 집단이 단 한 번도 새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반론이 더 강하다.
정체가 드러난다면 재앙일까
만약 사토시의 정체가 실제로 살아있는 특정 인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커뮤니티 안에서는 '지나가는 파도일 뿐'이라는 낙관론과 '구조적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경계론이 공존한다.

우선 부정적 시나리오부터 살펴보자. 현재 사토시의 지갑에는 비트코인 총 공급량 2,100만 개의 약 5%에 해당하는 110만 개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5년 넘게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아 시장에서는 사실상 '영구 소각된 물량'으로 취급받아왔다. 그런데 그 주인이 특정된다면, 이 물량은 언제든 시장에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 매도 압력으로 재분류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현재 가격 기준 약 120조 원에 달하는 물량이다.
가상자산 커뮤니티 '변창호 코인사관학교'를 운영하는 변창호 씨는 "비트코인 총 수량은 2,100만 개이고, 사토시 물량도 그 안에 당연히 포함된 것으로 시장이 인식하고 있다. 사토시 물량 빼고 1,990만 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대규모 매도로 가격이 급락한다면 오히려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장 충격 외에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비트코인의 핵심 정체성은 '주인 없는 네트워크', 즉 어느 개인이나 기관도 지배하지 않는 탈중앙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창시자가 살아있는 실존 인물로 드러나는 순간, 이 신화에 균열이 생긴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와 규제 당국이 해당 인물을 법적으로 압박하거나, 커뮤니티가 갑자기 등장한 '창업자'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반면 역설적이게도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비트코인 지갑은 '공개 키'와 '개인 키' 한 쌍으로 작동한다. 공개 키는 계좌번호처럼 외부에 알려주는 정보고, 개인 키는 그 계좌의 비밀번호다. 현재 컴퓨터로는 공개 키만 보고 개인 키를 역으로 계산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이 계산을 현실적인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다. 최근 구글 퀀텀AI 팀이 이 해독에 필요한 양자컴퓨터의 연산 단위(큐빗) 수가 기존 예상보다 훨씬 적어도 된다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위협이 한층 가까워졌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문제는 사토시의 초창기 지갑이다. 당시엔 공개 키를 블록체인에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는데, 이는 현대 지갑보다 양자컴퓨터 공격에 훨씬 취약한 구조다. 쉽게 말해 자물쇠 설계도가 이미 공개된 셈이다.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취약한 지갑들을 아예 동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언젠가 양자컴퓨터에 털리는 걸 감수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사토시가 살아있는 실존 인물로 확인된다면, 커뮤니티는 그에게 직접 110만 개의 코인을 양자컴퓨터가 뚫지 못하는 최신 방식의 주소로 옮겨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굳이 동결이라는 극단적 처방 없이도 보안 위협을 단번에 잠재울 수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비트코인의 불안 요소로 여겨졌던 사토시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오히려 네트워크의 장기 안전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 모든 논쟁은 사토시의 정체가 실제로 확인됐을 때의 얘기다. 퓰리처상 수상 기자의 끈질긴 추적도, 수만 건의 데이터를 동원한 AI의 분석도 결국 '심증'의 벽을 넘지 못했다. 누굴 지목하든 사토시 본인이 개인 키(Private Key)라는 침묵의 빗장을 풀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폭로는 정교한 가설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 110조 원의 주인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17년간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침묵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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