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폐지, 재고용… ‘셋 중 하나’로 해법 찾은 日

김아사 기자 2026. 4. 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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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안착한 일본 기업 가보니
퇴직후 재고용·정년 연장·폐지
기업들이 상황에 맞춰 자율 선택
지난 7일 오후 대구 달서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중장년 재취업 전략설명회'를 찾은 구직자가 취업 안내문을 읽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A 통신사. 전체 직원 중 57~60세 비율이 가장 높은 이 회사는 일본의 법정 정년인 60세에 다다른 직원들을 일단 퇴직시킨 후 재고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퇴직 후 재고용’ 제도다. 가와다 에이지 노무 담당 부장은 “숙련된 고령자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회사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60세 이후 근로 조건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건 우리의 가장 큰 의사 결정 중 하나”라고 했다.

A사는 퇴직 후 재고용된 이들의 근로 방식을 기존과 같은 풀타임 근무, 격일제, 주 4일, 주 3일 등 4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성과를 낸 사람들에겐 정년 후에도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삭감되는 제도도 만들었다. 가와다 부장은 “성과와 임금을 연동시킨 게 핵심”이라며 “근로자 만족도, 몰입도를 높여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우대하자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65세 정년 연장 논의’는 일본이 2000년대 초반 겪었던 문제다. 일본은 2004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2006년 시행)해 65세까지 고령자 고용 조치를 의무화했다. 당시 일본은 단순히 법정 정년을 연장한 게 아니라 기업들이 퇴직 후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목표 연령만 제시하고 기업별로 사정에 맞는 방식을 취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픽=이진영

◇日 통신사의 상생… 퇴직 1만명 전원 재고용, 신규 채용 2000명 유지

국내 정년 연장 논의 시작은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며 발생한 수급 공백 때문이다. 일본 역시 2000년 우리의 국민연금 격인 후생연금 개편 작업으로 연금 수급 시기가 3년에 1세씩 늦어져 65세로 늘어났다. 그러자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일본 노·사·정이 모여 논의를 시작했고, 2004년 법 개정을 통해 65세까지 고령자 고용 의무화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시노하라 츠요시 일본 후생노동성 고령자고용대책과 과장보좌는 “산업, 업종별로 고령자 고용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법정 정년을 무조건 연장하기보다는 각자의 사정을 존중하자는 것이 일본 정부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51인 이상 규모) 85.9%는 세 가지 선택지 중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선택했다.

닛산자동차 역시 정년 연장 대신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곳이다. 같은 날 만난 다카하시 소우타 닛산 노조위원장은 “정년에 도달하기 전 세 번의 면담을 통해 근로자가 퇴직 여부, 근무 형태, 업무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정년을 앞둔 55세부터 업무 책임을 줄이고 면담 과정에서 전일제와 시간제 근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임금을 줄이는 대신 근로자도 이 결정 구조에 참여해 합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日 자동차 부품 공장의 고령 엔지니어 일본의 한 고령 엔지니어가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닛산자동차 등 일본 대부분 기업의 직원들은 60세가 넘으면 ‘퇴직 후 재고용’되고, 임금과 직무 등 근로 조건이 바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닛산의 경우 퇴직 후 재고용 시 임금이 이전보다 평균 55% 수준으로 깎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카하시 노조 위원장은 “임금이 줄어드는 건 맞지만, 직무 자체가 공식적으로 재설정되고 책임도 줄어드니,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에도 임금 피크제 등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고령자 고용법상 연령 차별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소송 리스크 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업무 자체가 재설정되는 퇴직 후 재고용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년 연장 문제는 청년 신규 채용과 ‘동전의 양면’ 같다는 비판도 있다. 정년이 늘어나는 만큼 기업의 인건비 지출이 늘며 신규 고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에서도 20여 년 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노조 역시 이 문제에 공감해 일본 사회는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통한 ‘임금 체계 개편’에 나서는 길을 택했다. 기존 임금 체계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정년을 늘린 것이 아니라, 퇴직한 후 다시 재고용 절차를 밟아 새 임금 체계가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고령자의 임금을 깎아 신규 고용을 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든 것이다. A 통신사의 가와다 부장은 “퇴직 후 재고용 제도로 청년 채용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현재 정년퇴직자 1만명 전원이 재고용되고 있지만, 신규 청년 채용은 2000명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현재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다. 일본 관계자들은 ‘65세 법정 정년 연장’은 모든 기업이 실제 65세까지 고용을 대부분 마친 후 가장 마지막에 나와야 할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아베 히로시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 노동정책본부 총괄 주간은 “일본이 60세 정년 법제화를 결정했을 땐 수십 년간의 정책 유도를 통해 이미 기업의 93.3%가 60세 정년을 시행하고 있을 때였다”며 “65세 연장을 하려 한다면 이와 비슷한 조치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시노하라 후생노동성 과장보좌는 “일본은 과거 65세 고용 의무화 조치 이후 2021년 70세 고용 노력 의무화에도 나섰지만, 법적 정년은 여전히 60세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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