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부추긴 빈살만의 자책골? 사우디 네옴시티 좌초 위기

서보범 기자 2026. 4. 13. 00:4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더십 시험대에 올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5월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 ‘비전 2030’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고 개혁·개방을 내세운 이 구상은 사실상 빈살만 왕세자의 정치적 브랜드로 꼽히는데, 핵심 사업인 미래 도시 ‘네옴 시티’ 등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전쟁까지 겹치며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사우디가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 행동을 부추겼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면서 빈살만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빈살만은 2016년 석유 의존에서 벗어난 경제 다각화를 목표로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네옴 시티를 비롯한 신도시 건설, 홍해 관광 개발, 아람코 기업공개(IPO)와 지분 매각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여기에 포함됐다. 또 여성 운전 허용, 종교 경찰 권한 축소, 2030 리야드 엑스포 유치 추진 등 사회·문화적 개혁도 병행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등으로 인권 유린 국가라는 오명을 썼던 사우디가 국제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시도로 평가됐지만, 중동 정세가 급변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건설 비용이 1경3000조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초 5000억달러(약 743조원) 규모 예산을 제시하며 출발한 네옴시티 건설의 원안을 유지할 경우, 내부 추산 기준으로 완공 비용이 최대 8조8000억달러(약 1경 30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시작 당시의 예산 책정에 타당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길이 170㎞, 높이 500m에 이르는 건물 두 동을 사막에 세워 인구 900만명 규모의 선형(線形) 도시 ‘더 라인’을 조성한다는 구상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초기부터 이어졌다. 일부 구간 건설에 필요한 자재만으로도 국가 단위 생산량을 웃도는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네옴은 복합 스키 리조트 ‘트로제나’ 계획을 앞세워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선정됐지만, 리조트 공사가 지연되면서 개최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이를 포함해 비전 2030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유가 하락, 외국인 투자 유치 부진 등이 겹치며 사업 규모가 축소돼 왔다. 여기에 이란 전쟁이 기름을 부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사우디의 원유 수출은 전쟁 이전 대비 하루 약 20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트로제나 리조트 철강·구조 공사 계약이 해지됐고,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수주한 약 10억달러 규모 지하 터널 공사 계약도 사우디 측 요청으로 무산됐다. 전쟁 여파로 ‘걸프 지역은 안전한 투자처’라는 이미지마저 흔들리면서 투자 환경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빈살만, 정치적 시험대 올라

일각에선 빈살만이 이번 사태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공습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사우디의 적극적 로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빈살만이 공개적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지지했지만, 트럼프와 비공개 통화에서는 이번 전쟁을 “중동을 재편할 역사적 기회”로 보고 군사 행동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빈살만은 미국의 지상군 투입까지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이란 정권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을 경우 사우디가 군사적·경제적 보복에 직면할 가능성을 우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사우디가 공식적으로는 이란의 정권 교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혀온 것 역시 이란의 보복을 회피하려는 계산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란은 사우디의 유전과 정유 시설을 공습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결국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빈살만이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전 2030의 동력이 약해진 데다, 전쟁으로 에너지 인프라 피해와 외국인 투자 감소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대외적 신뢰와 내부적 리더십을 동시에 다져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는 2023년 이란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는데, 최근의 움직임이 이와 충돌하면서 이중적 태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WSJ은 “이런 상황은 사우디와 자신을 새로운 중동의 지도자로 세우고자 했던 빈살만의 목표에 위협이 된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