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눈] 후보님, 냉장고를 열어보셨습니까

박지은 2026. 4. 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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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입맛이 보통이 아니다. 정말 까다롭다."

연예인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가져와 그 재료만으로 셰프들이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하는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바둑 기사 이세돌이 냉장고 주인으로 나왔을때 아내가 미리 편지로 전달한 내용이다.

이세돌의 아내가 미리 편지를 써서 남편의 까다로운 조건을 알려줬듯, 주민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조건을 말해왔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가 재료를 보고 오늘의 요리를 구상하듯, 후보는 주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재료를 먼저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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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은 부국장·정치부장

“내 남편은 입맛이 보통이 아니다. 정말 까다롭다.”

연예인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가져와 그 재료만으로 셰프들이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하는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바둑 기사 이세돌이 냉장고 주인으로 나왔을때 아내가 미리 편지로 전달한 내용이다.

아내의 편지가 한 줄 한 줄 읽힐 때마다 셰프들은 당황했다. 이세돌은 설탕도 조미료도 치즈도 버터도 튀김도 싫어했다. 딸이 치킨을 시키면 튀김옷을 벗겨내고 먹고 케첩, 마요네즈를 비롯한 소스류를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셰프들은 자신의 특기를 내려놓고 주인의 조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세돌이 설탕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해 이날 요리 주제는 설탕 없는 ‘제로 슈거 대국’이 됐다. 주인의 조건이 곧 승부의 기준이 된 것이다.

권성준 셰프가 ‘우럭 칼국수’로 그 독특한 식성을 사로잡았다. 주인이 금지한 것들을 하나도 쓰지 않고도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세돌의 입맛이 어찌나 까다로웠던지 그 에피소드는 방영 이후에도 두고두고 회자됐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12년째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의뢰인의 입맛에 맞추는 게 승부의 핵심이다. 절대적인 실력 순위가 승패를 가르지 않는다. 냉장고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읽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한 요리도 지는 게임이다.

공천 시즌이 되면서 이세돌 편이 자꾸 떠올랐다. 두 달도 채 남지않은 6월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공천판이 요동치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여론조사 수치를 손에 쥔 채 당 관계자들의 문을 두드린다. 누가 더 인지도가 높은가. 누가 더 당선 가능성이 있는가.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그 경쟁에서 빠진 것이 있다. 냉장고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읽는 순서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심리정치’에서 ‘선거와 쇼핑, 국가와 시장, 시민과 소비자는 점점 더 닮아간다’고 썼다.

공천 여론조사 수치가 높은 후보를 고르는 논리는 가장 잘 팔릴 상품을 진열대에 올리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후보는 브랜드가 되고, 지지율은 판매 지수가 된다. 누가 더 많이 알려졌는가. 누가 더 팔리는가. 그 계산이 공천의 기준이 되는 순간 유권자는 사라진다.

자신의 냉장고는 열리지도 않은 채 누군가 정해놓은 메뉴를 받아들어야 하는 냉장고 주인처럼.

이세돌의 아내가 미리 편지를 써서 남편의 까다로운 조건을 알려줬듯, 주민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조건을 말해왔다. 그 목소리가 공천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지역 주민의 냉장고엔 지금 뭐가 들어 있는가. 줄어드는 인구, 필수의료 진료과의 공백, 취업난….

텅 빈 칸은 어디이고, 오래 묵어 처치 곤란인 것은 무엇인가.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가 재료를 보고 오늘의 요리를 구상하듯, 후보는 주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재료를 먼저 읽어야 한다. 텅 빈 칸을 채울 공약이, 처치 곤란인 것을 덜어낼 정책이 거기서 나온다. 주민의 재료로 만들어진 공약만이 주민의 입맛에 맞는다.

냉장고를 ‘부탁’한다.

주인이 셰프에게 냉장고를 맡기는 행위다. 유권자가 후보에게 지역을 맡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부탁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12년을 버텨온 프로그램이 있고, 4년마다 교체되는 정치인이 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공천판은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이세돌의 냉장고 앞에서 권성준 셰프가 먼저 한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주인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6월이 오기 전에 우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후보님, 지역 주민들의 냉장고를 열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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