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에 새긴 70년, 삶의 무게를 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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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차를 마시면 여러 층의 향과 맛이 천천히 펼쳐져 그날의 기억으로 남는다.
훌륭한 음악 연주 역시 청중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며 각자의 삶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게 한다.
그의 연주는 음악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성과물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손놀림은 무게감 있게 나열됐으며 부드러운 선율 속 그의 연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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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소나타 13번·20번 선보여
부드러운 선율 속 묵직한 음의 밀도
브람스의 ‘4개의 발라드’ 감정 구현

좋은 차를 마시면 여러 층의 향과 맛이 천천히 펼쳐져 그날의 기억으로 남는다. 훌륭한 음악 연주 역시 청중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며 각자의 삶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게 한다.
‘백건우&슈베르트’가 공연이 10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올해 팔순을 맞은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70년간 건반을 놓지 않았다. 그의 연주는 음악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성과물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연주를 반복했을 그에게서 ‘경지’에 이른 듯한 깊이가 전해졌다.
백건우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3번’으로 맑고 투명한 피아노의 선율을 펼쳤다. 부드럽게 시작된 연주는 감정이 섬세하게 퍼져나갔으며, 반복되는 주 선율의 흐름을 능숙하게 전개했다. 손놀림은 무게감 있게 나열됐으며 부드러운 선율 속 그의 연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음의 밀도 또한 남달랐다. 2악장에서는 건반을 누를 때마다 잔음의 다층적인 울림이 느껴졌다. 유려하게 흐르는 아르페지오에서 따스한 선율이 울렸다.
이어 브람스의 ‘4개의 발라드’로 농축된 연주를 선보였다. 첫 번째 곡은 낮은 음역에서 시작하며 무겁고 진중한 고뇌를 느끼게 했다. 곡을 아우르는 긴장감이 손끝에서 구현됐다. 2곡에서는 잔잔한 선율 속에서도 느껴지는 방황을 상상하게 했다.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지나치게 더하거나, 뺄 것도 없이 정제된 연주로 서사를 이어갔다. 3곡은 외줄타기 하듯이 강렬한 불안감이 찾아왔다. 폭풍에도 항해하는 배처럼 긴장을 유지하며 전진했다. 4곡은 음악적 정수였다. 다층적인 불협화음이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농축된 복잡미묘하면서도 여러 맛이 느껴지는 차처럼 느껴졌다. 그는 정교하게 음을 블렌딩했고, 층층이 쌓인 감정을 눌러담으며 연주했다.
백건우는 ‘슈베르트 소나타 20번’으로 음의 질서를 구현했다. 두텁게 짙은 정서의 밀도를 따라가며, 감정의 긴장도를 유지했다. 가볍고 경쾌한 선율 아래 음이 모험이 이어졌다. 2악장의 격렬하게 치닫는 음은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밝고 경쾌하게 흐르는 3악장으로 선명한 색채감을 부여했고, 건반의 무게 하나하나가 진중했다. 4악장에서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환희로 흐르는 연주를 구현했다. 백건우의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그의 삶이 읽혔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는 달라지는 감각을 깊은 무게감으로 구현했다. 엇나감도 자연스러웠고, 그의 손가락은 의연하게 음을 짚어냈다.
다만 일부 관객의 휴대전화 벨소리와 소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주자와 청중의 집중을 흐리게 할 만한 소음이 악장마다 이어졌지만, 백건우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첫 음과 마지막 음은 명확히 다른 무게를 지녔으며, 음률 사이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하는 연주였다.
백건우는 공연이 끝난 후 춘천 관객들에게 사인회를 열며 팬들과 만났다. 녹슬지 않는 직업인으로서의 태도를 보여준 그였다.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은 뚜렷했고, 가벼움이 부각되는 시대에 음악을 대하는 그의 깊이와 자세는 경전을 마주하는 선비 같았다. 그윽한 잔향이 삶에 남듯이 그의 연주는 경이로운 흔적을 남겼다.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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