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내도 아이도 떠났다, ‘소송 중독’에 빠진 남편의 결말 [이수진의 이혼 이야기]

이수진 2026. 4.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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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막으려 7년간 3심 소송을 이어간 남편의 소송 중독은 아내도 아이도 모두 잃은 채 사랑마저 완전히 소진되는 허망한 결과였다./남도일보·AI 생성 이미지

"이걸 보세요. 우리 가족은 괜찮습니다." 한 의뢰인이 서류봉투 대신 건넨 한 장의 사진. 가족 네 명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여행 사진이었습니다. 배경은 어느 바닷가였고, 아이들은 아직 어렸습니다. 아내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자신은 동의할 수 없다고, 기회만 주면 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은 아주 오래 전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이처럼 이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막기 위해 이혼 변호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자 아내 측에서 폭행 등 혐의로 형사고소까지 제기했습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 법원의 이혼 판단을 받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소송이 시작되자 그나마 오가던 일상적인 연락마저 완전히 끊겼습니다. 상대 변호사가 일체의 접점을 차단시킨 것입니다. 안부 문자 한 통, 명절 인사 한마디라도 오가면 "아직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쪽은 정반대였습니다.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부부가 여전히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혼인 파탄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고, 이혼 청구를 기각시킬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문자를 읽지 않았고, 전화도 일절 무시했습니다. 아이 학교 행사를 묻는 연락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소송의 구조적 특성이 부부간 남아 있던 마지막 연결마저 끊어버렸습니다.

어정쩡한 관계가 지속되며 아이의 혼란도 커졌습니다. 별거에 들어가며 아이는 아내가 키우고 남편에게는 격주 토요일 2시간 동안의 면접교섭이 주어졌습니다. 밥만 먹기엔 아쉽고, 놀이공원에 데려가기엔 짧은 시간. 처음에는 아이가 달려와 안겼지만, 횟수가 늘며 아이는 지쳐갔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아빠, 집에 언제 와?"라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집에는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헤어지지 않으려고 싸우는 동안, 정작 지키고 싶었던 일상은 산산이 부서져 갔습니다.

1심은 아내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혼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저는 의뢰인에 항소 대신 이혼 상태로 공동양육자로서의 관계에 집중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법리적으로 판단을 뒤집을 새로운 사정 변경이 없었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뢰인이 잃는 것만 늘어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뢰인은 항소를 고집했습니다. 2심도 패소하자 대법원까지 가야겠다며 상고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는 첫 소송 제기로부터 7년이 지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어느덧 중학생이 돼 '주말 아빠'에 익숙해지고 무뎌졌습니다. 사진 속 웃고 있던 아이는 이제 사진을 함께 찍자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돌립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전하던 날, 그는 여전히 미련을 놓지 못했습니다. "왜 한국은 3심제입니까. 한 번 더 다투고 싶습니다." 의뢰인에게서 느껴진 것은 감정적인 억울함이나 원망보다는 '관성의 늪'이었습니다. 이제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소송 그 자체에 집착하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긴 시간 소송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려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붙잡는 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건만 오히려 사랑이 철저하게 소진되는 결과가 됐습니다. 때로는 놓을 줄 알아야만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수진 변호사 ·법무법인 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