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537] 아비뇽 교황청의 물고기 연못

내 인생에서 가끔씩 꾸었던 예지몽이 세상사를 보는 시야를 넓혀 주곤 했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정신적 에너지가 뭉쳐 있는 종교적 영지(靈地)에서 꾼 꿈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2024년 4월 남프랑스의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 답사 전날에 꿈을 꾸었다. 아비뇽은 옛 성벽도 그대로 남아 있는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였다. 내가 머무른 숙소는 교황청 바로 옆에 붙어 있다시피 위치한 조그만 호텔이었다. 밖에서 보니 교황청은 바위산을 깎아서 지었는데, 견고한 성벽 같은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영적인 기운을 품고 있으면서 군사적 방어를 겸한 건물로 보였다. 투숙한 호텔도 교황청과 맞닿은 바위산의 암반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기운이 좀 있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호텔에서 꾼 꿈의 내용은 이렇다. ‘하얀색 사제복 같은 옷을 입은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주 위엄 있으면서도 우아한 자태였다. “뭐 하는 사람이냐?” 필자가 “신문에 칼럼 쓴다”고 대답하자 그 흰옷 입은 남자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옆에서 대여섯 명의 요리사가 나타나 네모진 수조(水槽)에 들어가 70~80㎝ 정도 크기의 잉어 같은 물고기들을 두 팔로 잡았다. 이걸로 요리를 해서 필자에게 주었는데 꿈속에서도 그 음식 담은 접시가 아주 고급스럽게 보였다.
꿈에서 깨고 다음 날이 되었다. 입장권을 끊고 교황청 건물 유적지에 들어가 과연 수조가 있는지 둘러보게 되었다. 프랑스 출신이었던 클레멘스 5세가 새 교황으로 등극하여 로마에 머물지 않고 아비뇽에 머물기 시작한 해가 1309년부터였다. 이때부터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7명의 프랑스인 교황이 아비뇽 교황청에 머물렀다. ‘아비뇽의 유수’ 시대였다. 교황청 앞 지형은 론(Rhone) 강이 하중도를 두고 두 갈래로 흐르는 독특한 형국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임수에 해당하는 터 앞의 강물이 두 겹이면 재물도 2배로 모인다. 프랑스인들도 풍수를 봤구나!
과연 교황청 내부에는 물고기를 키우는 커다란 인공 수조(연못)를 두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원과 회랑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론강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여기에다 풀어놓고 생선 요리로 손님 대접을 했다고 나온다. 금육일(禁肉日)이나 사순절 기간에 물고기를 주된 단백질원으로 섭취했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이란 공격을 여러 차례 비판한 교황을 얄밉게 여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쪽에서 ‘현대판 아비뇽 유수’까지 거론한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트럼프는 교황에게도 한 방 먹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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