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취급한 김치, 진짜 중국에 뺏긴다…김치명인의 섬뜩한 경고 [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역사 이래 이렇게 김치가 맛없었던 시절은 없었을 겁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58호 이하연 명인의 말은 충격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 명인이자, 김치 사업가인 그가 김치를 ‘최저’라고 평가하다니, 자승자박 아닌가.
하지만, 나는 곧 이 말이 김치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뼈 아픈 호소임을 깨달았다. 무너지는 둑을 온몸으로 막듯, 그는 지금의 김치 문화에 닥친 위험을 목청껏 경고한 것이다.
“적어도 제가 태어난 70년 가까운 세월을 돌이켜보면, 가난했던 과거보다도 지금이 더 김치의 품질은 낮아졌습니다. 추억을 미화한 게 아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말입니다.”

김치의 품질을 무너뜨린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김치를 한국의 얼굴이라 말하면서도, 식탁 위에서는 공짜 반찬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 모순된 태도가, 김치를 서서히 추락시켰다.
“좋은 김치를 찾는 사람도, 값을 지급하려는 사람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짜가 당연한 싸구려 취급뿐입니다. 김치에 값을 지급하려고 하지도 않으니, 요식업계에서는 당연한 듯 저렴한 외국산 김치만 씁니다. 심지어 인당 7~8만원에 달하는 비싼 한우집에서조차 당연한 듯 외국산 김치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의 말대로 김치를 외면한 대가는, 처참하다. 외국산 김치에 우리의 식탁은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치의 해외 의존도는 매년 많이 증가하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김치 수입량은 약 4만9846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4% 증가했다. 99%는 중국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 김치를 한국의 대표 음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요즘 김치의 또 다른 문제로 ‘단맛과 인공 감칠맛’을 꼽는다. 식품첨가물과 설탕으로 맛을 내려는 지금의 김치는 결코 과거 김치가 가지고 있는 깊은 맛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이하연 명인의 견해다.
“요즘 김치 레시피를 보면, 설탕과 식품첨가물으로 맛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젓갈도 온갖 첨가물이 들어간 것을 사용하고요. 겉절이로 먹으면 달콤함과 감칠맛에 입에 감길지 모르나, 김치가 숙성된 이후에는 김치가 내야 할 본연의 깊은 맛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실제 이하연 명인의 김치에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좋은 배추와 무, 마늘, 고춧가루 그리고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젓갈이 주재료다. 그의 김치는 시중에 판매하는 김치와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특히, 이하연 명인의 김치는 익었을 때 맛의 꽃을 피운다. 젓갈의 비릿함은 사라지고, 응축된 감칠맛이 올라오면서 감미료로는 감히 따라 올 수 없는 고유한 김치의 풍미를 뿜어낸다.

이하연 명인은 이마저도 조선의 김치와 비교한다면, 아직도 모자란다고 자평했다. 조선 왕실이나 양반가에서 먹은 김치는 화려하기에 그지없었다. 1809년 실학자 이빙허각이 집필한 기술집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따르면 섞박지에는 배추와 갓, 오이, 가지, 동과 등 채소에 조기젓과 준치, 밴댕이젓, 굴젓을 넣고 소라와 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어 만들었다. 이하연 명인을 명인 대열로 올린 대표 김치가 ‘해물섞박지’인데, 규합총서의 섞박지를 현대 재료로 재해석한 김치다.
조선 시대에 ‘석류김치’는 무에 바둑판 모양으로 칼집을 내고 그 사이사이에 버섯, 밤, 마늘과 같은 속을 채워 담근 김치다. 익었을 때, 마치 석류가 벌어진 모양이 난다고 해서 석류김치라는 이름이 붙었다. 손이 많이 가고 재료 하나하나 본연의 맛을 잘 살려 조선시대에도 왕가에서 먹었다고 한다.

이하연 명인은 1958년 전라북도 익산 웅포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아름다운 금강을 끼고 푸른 들판이 펼쳐진 풍요로운 곡창지대였다. 이하연 명인은 책보를 매고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서 온갖 식자재를 채취하며 성장했다. 봄이면 나물을 캐다 비빔밥을 해 먹고, 가을에는 늙은 호박을 따다 죽도 해 먹고, 전도 부쳐 먹었다.
이하연 명인의 집은 그리 유복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먹고 살기 위해 경기도 이천 장호원 시장 한켠에서 만두 장사를 시작했다. 남편은 외화를 벌기 위해 호주로 떠났다. 이 명인은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필사적으로 살았다. 만두는 입소문을 타고 꽤 잘 됐다. 요리에 소질이 있음을 깨닫고 서울 대림동 가건물에서 노동자들과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한 백반집을 운영했다. 2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하루에만 100인분을 팔 정도로 잘 됐다고 한다.

그가 김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00년 초 ‘중국산 김치가 한국 식탁을 넘보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다.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가 중국산 김치에 밀릴 수 있다는 뉴스에 그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종주국의 대표 음식을 해외에 의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나부터라도 김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 고조리서를 연구하면서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김치와 관련한 모든 것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뿐 아니라 김치와 관련한 과학적 논문들, 인문학적 사료들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럴 수록 그는 김치의 매력에 더욱 더 빠져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 명인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대표적인 김치 명인 중 한 명으로 이하연 명인을 소개했으며, 영국 찰스 국왕에게도 김치를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업적은 ‘김치의날’을 만든 것이다. 2년 동안 국회와 정부를 설득해, 2018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하연 명인은 앞으로 김치 종주국으로서, 김치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고 좋은 김치 문화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다. 그 일환이 ‘김치문화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김치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김치와 가깝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억지로 김치에 관심을 가지고, 김장을 하라고 요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문화에 녹여 사람들 스스로가 김치에 재미를 붙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김치문화관이 그런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합니다. 지역별 주민 커뮤니티공간에 김치문화관을 설치해, 주민들이 편하게 김치 관련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정말 맛있는 김치를 직접 만들면서 자연스레 김치의 매력을 빠져들어야 합니다.”

그는 김치를 다시 ‘문화’로 돌려놓으려 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김치를 만들고, 맛보고, 이해하는 공간. 그 안에서 김치는 다시 음식 이상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 김치를 지키는 일은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김치를, 돈을 내고 먹을 가치가 있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예은·바타, 열애 중…교회 친구에서 연인으로
- 지드래곤도 차은우 130억 세금 완납에 ‘좋아요’ 꾹
- “넋 나간 표정, 국선변호인도 입 닫았다”…‘모텔살인’ 김소영, 첫 재판 방청 후기
- “게장+감 먹지마, 궁합 안 맞아” 초밥 뷔페 안내문 ‘술렁’
- 서유리, 악플에 “손 떨린다”…검찰 제출 의견서 쓰다 심경 토로
- ‘의천도룡기’ 출연 여배우, 구토하다 ‘이것’ 때문에 사망
- “여행 다녀왔어요? ‘50%’ 환급해드려요”…최대 20만원까지 받는다는데
- 음력 생일까지 똑같다…사라진 유망주·혜성처럼 등장한 中 선수, 동일인 의혹
- “아내 공유하라” 목사 가르침에 연예인까지?…난교·성착취로 논란된 경기도 교회
- “수학여행 2박3일에 60만원, 너무 비싸” 논란에…현직 교사 “자괴감 크고 부담” 반박글 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