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퇴직자는 왜 산에서 돌을 캤을까?[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2026. 4. 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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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의 어느 아침, 오랜만에 집 근처 산을 찾았다. 겨우내 입고 다녔던 점퍼가 거추장스러울 만큼 기온이 올라 있었다. 산 초입 계단을 오르자마자 금세 숨이 차올랐다. 추운 겨울에 굳어 있던 몸이 봄볕 아래서 새삼 제 나이를 실감하게 했다.

헉헉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먼발치에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길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물건을 찾는 것 같기도 했고, 땅속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봄날 산 중턱에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뭐 잊어버리셨어요?”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분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아뇨, 돌을 캐고 있어요.” 순간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돌을 캔다’는 표현이 왠지 어색하고 생소 하게 들렸다. 의아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짧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설명이 이어졌다.

“이 돌부리들 때문에 다칠 뻔했거든요.” 그분은 얼마 전 그 길을 걷다가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위험하다 싶어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언제 처리될지 몰라 직접 나서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고개를 돌리니 길옆으로 뽑아낸 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커다란 생수병 하나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마땅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를 지나왔다.

며칠 뒤 같은 산을 다시 찾았을 때, 그분은 여전히 같은 곳에서 돌을 캐는 중이었다. 모른 척 가려는데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길이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불쑥불쑥 솟아 있던 돌들이 상당 부분 사라졌고, 울퉁불퉁하던 흙길은 한결 고르게 다져진 상태였다. 그제야 무심코 다녔던 길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가는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니겠지만, 나는 알았다. 그 변화가 한 사람의 손으로 묵묵히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분은 본인을 시간 많은 60대라고 소개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임원으로 퇴직했고, 이후 한 차례 재취업했으나 지금은 뚜렷하게 정해진 일 없이 지낸다고 했다. 목소리에는 쓸쓸함도, 억지스러운 활발함도 없었다. 상황을 부풀리거나 애써 감추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자신의 근황을 풀어놓았다.

“집에 있으면 뭐 합니까. 이런 거라도 하면 누군가는 편하게 다니겠지요.” 그분이 돌을 뽑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대단한 명분도 담겨 있지 않았다. 본인이 납득이 되면 시작하고,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닿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태도. 퇴직 이후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가운데, 그분은 이미 자신만의 해법을 찾은 듯했다.

오랫동안 명함과 직위로 스스로를 설명해 온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는 낯설고 막막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퇴직 후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말들을 했다. 일이 없어서 힘들다기보다, 내가 아직도 쓸모 있는 존재인지를 확인할 방도가 없어 서글프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직함을 내려놓은 뒤 제일 먼저 마주한 건 텅 빈 다이어리가 주는 공허함이었다. 이제는 내가 소용없다는 기분이 자꾸만 나를 위축시켰다.

그분이 산길에서 돌을 캐는 일은, 어쩌면 그 감각을 되찾는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남들이 박수를 보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다듬은 흙길 위를 누군가가 편안하게 걷는다는 것, 그 한 가지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퇴직자에게 일의 의미란 그리 큰 데 있지 않은 듯했다. 지위와 역할만이 다가 아니라, 내가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

나를 돌이켜 보면 퇴직 후에는 일의 의미를 찾으려 할수록 더욱 멀어졌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동안 몸이 먼저 굳어버렸다. 그런데 막상 손을 대면 달라졌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것들이 움직이는 순간에 비로소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사소한 하나라도 일단 하면 됐다. 일의 의미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작게나마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었다.

4월의 산은 서두르지 않는다. 진달래꽃이 지고 나면 연초록 잎이 돋아나고, 또 그렇게 계절은 아무 말 없이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분도 4월의 산처럼 자신의 봄을 살고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려 조급해하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매일 자기만의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결국 그분이 캐낸 것은 돌만이 아니었다. 퇴직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조용하지만 가장 분명한 답이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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