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현장]84년과 12년, 기억의 시간
지난달 ‘시사IN’에서는 84년 전 조선인 136명을 비롯해 183명의 노동자가 수몰된 조세이 해저 탄광의 유골 수습과 관련된 이야기가 보도됐다. 안타깝게도 유골 수습 작업에 자원해 참여한 민간 잠수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프로젝트 전반을 주도했던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죽은 사람의 뼈를 가져오려다 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붕괴 가능성이 높았던 탄광을 운영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비극에 대해 ‘기억하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고 직후, 사망한 잠수사의 유족과 동료들은 유골 수습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가오는 목요일(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대다수 대학과 지방정부는 애도를 이유로 각종 행사를 취소했다.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웃고 떠드는 자리를 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예산과 여력이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적극적인 추모와 성찰로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이태원에서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자, 정부는 애도를 이유로 참사와 관련한 토론과 모임을 막았다. 그러나 그 회피가 공동체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는, 반복된 참사와 정치적 공세를 통해 충분히 감각하고 있다.
조세이 탄광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간 잠수사가 남긴 질문 중 하나는 ‘인간은 우리 존재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이다.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칼 앞에 섰던 시민들, 2024년 12월3일 여의도에서 군에 맞섰던 시민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던 잠수사들까지. 만약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행동만 가득한 사회였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타적 행동들이 공동의 기억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지만,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84년 전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조세이 탄광의 희생자들은 비로소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12년이라는 시간은 때로는 길다고 여길 수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기억을 새기는 과정에 있어서는 결코 지겹지도 종결되지도 않은 시간이다. 지금도 우리가 기억을 붙잡고 애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래야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오송 지하차도, 제주항공 여객기, 삼풍백화점, 쿠팡과 아리셀 공장까지,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려운 사회적 죽음들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시간을 보내는지는 결국 전혀 다른 기억을 남긴다. 물론 기억을 위해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기에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하다. 다만 그 결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회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삶을 살다가 오로지 사회의 문제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들의 죽음이 단순한 과거로 머물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시간을 현재로 계속해서 불러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곁에 노란 리본과 보라색 리본을 계속 남겨두자.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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