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앞두고, 세자녀 남겨두고…돌아오지 못한 소방관들

광주일보 2026. 4.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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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전복 가공업체 냉동창고 화재 진화 중 소방관 2명 순직
밀폐된 구조 속 유증기에 불 붙어
2차 진압 10분 뒤 불길 급속 확산
긴급대피 지시했지만 탈출 못해
안타까운 사연에 비통함 더해
동료들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다”
가족들 애끓는 통곡 수시간 이어져
12일 오전 8시 20분께 완도군 군외면의 한 전복 가공업체 창고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 두 명이 숨졌다.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남소방본부 제공>
완도 냉동창고 화재로 소방관 2명이 숨진 사고는 2차 현장 진입 과정에서 벌어진 급격한 연소 확대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소방관들이 1차 화재 진압을 마치고 현장에 불길이 한 차례 잦아든 뒤, 2차 진입을 했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폭발에 휘말려 변을 당했다.

◇2차 진압 했다가 사고=12일 완도소방 등에 따르면 이날 완도소방 박승원(44) 소방위와 해남소방 노태영(30) 소방사는 화재 제압을 위해 2차 현장에 투입됐다가 사고를 당했다.

박 소방위 등은 이날 오전 8시 25분 화재 신고를 접수하고 오전 8시30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은 완도구조대원 4명, 해남소방서 북평지역대원 2명, 완도센터 진압대원 1명 등 7명이었다. 이들은 오전 8시 38분 1차 진입을 실시해 초기 진화 작업을 벌이고 업체 관계자들을 구조했다.

이후 외부로 나와 상황 판단 회의를 하던 이들은 창고 내부에서 연기가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오전 8시 45분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 2차 진압에 나섰다.

2차 진압이 시작된 지 10분여가 지났을 무렵, 창고 내에서 불길이 갑자기 거세지고 다량의 검은 연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지휘관은 무전기를 통해 긴급히 대피할 것을 지시했으며, 대원 7명 중 5명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박 소방위와 노 소방사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씨는 오전 10시께 냉동실 입구에서 5여m 안쪽 지점에서 발견됐으며, 노씨는 화재가 완전히 진화된 직후인 오전 11시20분께 입구에서 3여m 안쪽 지점에서 내부 패널 구조물에 깔린 상태로 발견됐다.

◇유증기 폭발=화재 현장은 밀폐된 구조에다 가연성 내장재, 초기 화재 제어 설비 부족 등 문제가 겹쳐 불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가연성 물질이 사방에 깔려 있고 밀폐돼 있어 연기와 유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는 위험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가 발생한 냉동창고는 천장과 벽면에 불에 쉽게 타는 우레탄폼을 도포하고 그 위를 패널로 마감한, 이른바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돼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창고는 창문이 없고 환기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어 밀폐된 내부에 연기와 유증기가 쌓이기 쉬운 구조였다.

소방당국은 바닥 등에 깔려 있던 에폭시, 우레탄으로부터 유증기가 나와 창고 내 천장 등에 축적돼 있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쌓여 있던 유증기에 불이 붙으며 폭발적으로 불이 확산하는 이른바 ‘플래시 오버’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또 해당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창고 건물은 연면적이 3095.74㎡였는데,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바닥 면적이 5000㎡ 이상(일반 창고 건물 기준)이어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생긴다.

◇세 아이 아빠, 예비신랑 안타까운 죽음=사고로 숨진 소방대원들은 세자녀를 둔 가장이자 든든한 아버지, 또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날 두 대원이 안치된 완도읍의 한 병원에는 가족들의 애끓는 통곡이 수시간동안 이어졌다. 근무를 마친 뒤 급히 병원을 찾은 동료 소방대원들 역시 믿기 힘든 비보에 눈물범벅이 된 채 한참 동안 병원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박씨는 어릴 적부터 소방관을 꿈꿔 대학 졸업 후 고향 완도에서 근무를 시작, 19년째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소방대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의 고모 박모(74)씨는 “어른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먼저 나서 대신 들어주는 등 어떤 일이든 솔선수범하던 조카였다”며 “성품이 워낙 좋아 이웃들도 ‘큰 인물이 졌다’며 제 일처럼 슬퍼하고 있다. 가장 어린 자녀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어린 자식들과 아내를 두고 이렇게 떠나가니 너무 비통하다”고 연신 눈가를 훔쳤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박씨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대원으로 기억됐다. 직장 동료 정모씨는 “박씨는 항상 책임감 있게 행동하던 동료였다”며 “현장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나서 동료들을 이끌고 챙기던 분이었다”고 울먹였다.

노씨 역시 2022년 임용된 화재진압대원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성실한 대원으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오는 10월 결혼식을 앞두고 한창 결혼 준비를 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 합동 감식을 마치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당시 내부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소방당국도 진입 및 대피 과정 전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숨진 대원들의 장례는 전라남도지사장으로 엄수되며, 영결식 일정은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완도=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완도=윤주은 기자 yun@kwangju.co.kr

/완도=정은조 전남총괄취재본부장 ejhu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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