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의 파고 너머 '포스트 이란'… K-프리미엄 강화의 길은 [이종윤의 밀리터리 월드]
美 전쟁법 '90일' 리셋과 호르무즈 통제권은
1300조 재건 시장과 'K-신뢰', 전략적 결단은

하지만 양측 모두 공식 '휴전 파기'를 선언하지 않는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전쟁 수행 기간 리셋을 노리는 미국의 계산과 전열을 정비하려는 이란 군부의 절박함이 맞물린 '동상이몽(同床異夢)적 침묵'이다. 이란 신정 체제의 복원력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 세계 군사 연구소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중동을 뒤흔드는 지정학적 혹은 지경학적 소용돌이는 이미 '포스트 이란'을 향하고 있다.
이란 같은 신정일치 국가에서 모스크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다. 국가의 정책이 전파되고 체제 이데올로기가 주입되는 '정치적·사회적 거점'이다.
모스크의 급격한 폐쇄는 전쟁 이전부터 이란 국민의 민심이 이미 체제의 통제권 밖으로 이탈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평가된다.
모하마드 모흐베르 대통령 대행은 미·이스라엘과의 협상 창구로서 기능하려 하지만, 실권자인 혁명수비대 (IRGC) 강경파들이 협상 무용론을 주장하며 그의 권위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모흐베르 역시 군부의 독단적인 작전 수행에 대한 '사후 공식 승인'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전쟁부) 공식 브리핑을 종합하면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정규군 해군의 전력은 사실상 궤멸수준에 이르렀다. 5000여 개에 달했던 기뢰(전체 보유량 중)의 97%가 미군의 정밀 타격으로 파괴되었고, 남은 150여 개의 기뢰만으로는 해협 통행을 차단할 수 없다.
미 워싱턴 D.C의 민간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 ) 소속 해군의 고속정과 자폭 드론 역시 미군의 최신예 전자전기 EA-37B의 재밍(교란) 앞에 그 기능이 무력화 되었음이 증명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잔존한 기뢰는 단 1발의 기뢰라도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한 민간 상선에는 치명적인 심리적·물리적 저지선이 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로이드를 비롯한 글로벌 재보험사들이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전쟁 위험 할증료를 천문학적으로 높이거나 보험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물류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난항이 예상됨을 시사한다.
반면, 사우디·UAE·요르단 등 아랍권은 미군과 이스라엘에 영공을 개방하며 이란의 위협에 맞선 실리적 안보 연대를 선택했다. 이에 미국은 나토라는 거대 기구에 의존하기보다 그리스·루마니아처럼 협조적인 동유럽과 전장의 파트너인 아랍권을 잇는 '실전형 소다자 안보 체계'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모양새다.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 역할 축소와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에게 더욱 구체적인 안보 기여와 유연성을 요구하는 전조가 될 전망이다.
미 대통령은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에 따라 의회 동의 없이 60일간 전쟁을 수행하며, 필요시 30일의 철수 기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코소보 공습(1999년)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리비아 개입(2011년) 당시에도 전쟁 중 휴전 기간이 발생하면 법적 해석의 유연성을 적용해 의회 승인 없이 작전 기간을 새롭게 리셋 카운트 하는 '관행'을 보여왔다.
이번 휴전 역시 이러한 법적 시계를 다시 맞추는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전쟁에서도 이 같은 과거의 전례가 예외 없이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
헤리티지 재단 등 보수 성향 연구소들은 "이란의 위협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미 대통령의 전쟁수행권 행사를 제약하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는 논리로 트럼프 행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 미 상·하원의 초당적 안보 공감대를 고려할 때, 이번 '90일 시계'의 재가동 역시 큰 정치적 제동 없이 관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이 이토록 집요하게 이란을 몰아붙이는 궁극적인 목표는 이란의 '정상국가' 복귀다.
호르무즈의 거친 파고는 중·러로 이어지는 유라시아의 권위주의·독재 벨트의 에너지 공급망을 끊고, 미국과 서방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 통제권·패권을 재설계하려는 그레이트 게임 완성을 향한 마지막 퍼즐로 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논리를 넘어선 중동 내 K-방산과 영향력의 확장은 미국 주도의 신 중동 질서 속에서 안보 파트너로서의 '전략적 감내'가 전제될 때 보다 원활해질 전망이다. 동시에 미국이 앞으로 세계 주요 해상교통로(SLOCs, Major Sea Lines of Communication)의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해 주는 구조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쟁에서 드러났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우방국과의 공조와 상선 보호 체계의 가동, 에너지 비축 확대와 공급선 다변화 등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정의하고 '전쟁론'으로 유명한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최후의 승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린 가장 단호한 결단의 결과"라고 했다. 에너지 안보와 해양 안보를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대한민국의 '전략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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