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지옥’ 우려했지만…재판소원제 한 달, 법정 더 꼼꼼해졌다

오연서 기자 2026. 4. 1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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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을 침해한 법원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취소하는 재판소원제 시행 한달이 다 되도록 헌재의 사전심사 문턱을 넘은 사건이 전무한 가운데 '소송 지옥' 등 우려와 달리 법정 안팎에서 긍정적인 연쇄 반응이 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헌재는 이와 관련해 "(청구 내용이) 법원의 사실인정 또는 증거의 평가 등을 다투는 것이거나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해, 법원 재판으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되었음이 명백하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모두 '단순 불복' 사례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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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건 접수…헌재, ‘1호 사건’ 엄선 나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기본권을 침해한 법원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취소하는 재판소원제 시행 한달이 다 되도록 헌재의 사전심사 문턱을 넘은 사건이 전무한 가운데 ‘소송 지옥’ 등 우려와 달리 법정 안팎에서 긍정적인 연쇄 반응이 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판 과정에서 주요 판단 근거로 헌법적 가치가 주목을 받는가 하면 판사들도 판결의 절차적 정당성 강화에 신경 쓰는 등 긴장과 변화의 움직임이 읽힌다는 것이다.

12일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재판소원제 시행 뒤 지난 11일까지 접수된 사건은 모두 384건으로, 연평균 3066건인 일반 헌법소원 사건보다 접수 속도가 빠르다. 헌재는 매주 화요일 사전심사를 통해 1호 사건을 고르고 있는데, 지난 7일까지 194건을 전부 각하했다. 오는 14일 4번째 사전심사가 예정돼 있다.

각하 사건 가운데는 ‘판결 확정 30일 이내 청구’ 기간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례가 46건에 달했다. 또한 ‘명백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아 각하한 경우는 128건으로 가장 많았다. 헌재는 이와 관련해 “(청구 내용이) 법원의 사실인정 또는 증거의 평가 등을 다투는 것이거나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해, 법원 재판으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되었음이 명백하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모두 ‘단순 불복’ 사례로 분류했다. 재판소원이 법원 판결로도 구제받지 못한 ‘기본권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지, 3심제 위의 4심제가 아니라는 취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헌재에선 향후 재판소원 사건의 가이드라인으로 ‘1호 사건’의 상징성이 큰 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본권 침해 사례를 전원재판부에 처음 올려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10대 법무법인 소속의 한 변호사는 “재판소원 사건 의뢰가 종종 오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고객들인 대기업 등과 관련한 사건이라 재판소원 취지에 딱 들어맞는 사건인지 확신하기 어려워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헌재가 ‘1호 사건’을 엄선하는 사이 법조계에선 재판소원이 도입되면서 일선 재판 현장에서 헌법 조문의 위상이 높아지는 등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인권 침해 사건 대리 경험이 많은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요즘에는 같이 일하는 변호사들에게 재판부에 서면을 낼 때 헌법 조문을 쓰게 하고 있다. 그동안은 재판에서 헌법 얘기를 꺼내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민망했는데 이제는 법원이 이런 주장을 이유 없이 기각했다가 재판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헌법적 가치를 지향하는 주장을 재판부에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에서 재판이 취소된 이후의 절차 마련에 법원도 분주하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헌법·행정법연구회의 학회장인 이규홍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반장으로 하는 ‘재판소원 후속조치 연구반’을 최근 꾸렸고, 이 연구반은 앞으로 6개월 안에 연구 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다. 형사사건을 전담하는 한 판사는 “판사로서는 내가 했던 사건이 (헌재에서) 취소되는 것이 큰 부담이다. 사소한 절차라도 제대로 지켰나 이전보다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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