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연기 하나로 시대를 지배… 日강점기 최고 배우
운전기사·유랑극단·간판쟁이·극단 연구생으로
연출가 홍해성에 사실주의 배워 연기력 급성장
임선규와 콤비 '김옥균'·'동학당' 등 잇단 성공

"신파고 뭐고 한국의 연극배우를 통틀어서 황철이 제일"(김동원 작고 배우)
"천부적 배우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연극쟁이"(변기종 전 국립극단장)
"해방 전 최고의 스타이자 한국 연극사상 최고의 배우"(한상언 영화사학자)
"조선 인민이 낳은 천재적 예술가, 인민배우"(북한 애국열사릉의 묘비)
남북한에서 모두 '최고의 배우' '대배우'로 평가받는 배우가 있다. 충남 청양 출신 황철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공간, 6.25 전쟁과 남북 분단시기 한반도에서 연기를 가장 잘 했던 배우이자 스타였다. 연극도 하고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극단도 운영하고, 제자도 가르쳤다. 한국 연극사에서 '연기'에 관한한 현장과 실무, 경영, 이론까지 두루 섭렵했던 인물이 황철이다. 연기 이론에 밝아 선구적인 저술도 남겼다. 동시대 활동했던 변기종 고설봉 이원경 차범석 등의 연극인들은 모두 신극 도입 이후 최고 배우로 황철을 꼽았다.

청양 출신의 황철은 논산 출신 극작가 임선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나이도 동갑이고, 연극판에서 이름을 드날린 시기도 같다.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통해 조선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게 황철이고, 이 대본을 써서 일약 흥행작가로 자리 잡은 게 임선규이다. 둘 다 해방 이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생을 마쳤다.
배우 황철은 인생 자체가 드라마이다. 극장 간판 그림쟁이에서 배우를 거쳐, 해방 후에는 이념 전쟁에 빠져들었다. 월북하여 활동하다 6.25전쟁 때 팔을 잃었으며 북한정권에서 출세하여 차관까지 지냈다. 한국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굴곡을 고스란히 밟았다.
황철은 1912년 충남 청양군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청양군수를 지낸 황우정이고, 작은 아버지는 천안군수를 지낸 황우창이었다. 어렸을 때 글씨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근무지인 춘천으로 가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여기서 부모가 모두 사망하자 서울로 이사하여 배재고보를 다녔다. 형편이 어려워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를 댔으나 결국 중도에 자퇴하고 말았다. 춘천고보와 배재고보에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학적부는 확인된 바가 없다.
생활전선에 나선 황철은 강원도에서 운전사의 조수로 취직한다. 당시만 해도 운전기사는 인기도 많고 돈벌이가 좋은 인기 직업이었다. 황철은 6개월 정도 조수로 일한 뒤 면허증을 받아 춘천-홍천을 왕래하는 자동차의 기사가 됐다. 어느날 주막에서 자주 들러 술을 마셨는데 음주로 교통사고를 내게 됐다.
문제는 차 안에 홍천주재소(파출소) 소장의 딸이 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고로 여성이 얼굴을 크게 다쳤다. 황철은 감옥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이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됐다. 그러나 평생 함께 살 수 없다고 여긴 황철은 야반도주했다. 10여리 밖으로 도망친 곳에서 유랑극단을 만났다. 황철은 극단에 들어가 단역으로 출연하고 무대장치를 거들며 1년 여를 지냈다.
극단이 서울에 이르렀을 때 몰래 빠져나와 종로의 간판집에 취업했다. 여기서 극장 간판도 그렸는데 연극 단체인 조선연극사의 공연 포스터를 보고 연극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1931년 조선연극사의 변기종 단장을 찾아가 연구생으로 입단했다.
이때부터 황철은 연극배우의 삶을 시작했다. 열심히 연기를 배우며 단역에 출연했고, 1932년에는 '홍길동'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었지만 타고난 재능 덕분에 금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1932년 10월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청춘난영' 주연배우 이경한이 아편 복용으로 일제경찰에 끌려간 것이다. 급하게 대역을 맡게 된 황철은 열심히 노력한 끝에 무난하게 공연을 마치게 된다. 이 극단의 주요 배우인 강흥식이 지방공연을 기피했기 때문에 그 역할이 황철에게 돌아왔다. 주연 배우로서 연기를 현장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배우고 익히는 기회가 됐다.


황철은 1935년에 세워진 동양극장에 들어가면서 일생의 기회를 맞는다. 연출가 홍해성을 만나면서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극작가 임선규를 만나면서 흥행작에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홍해성(1894~1957)은 일본 주오대학에서 법학을 배우다 연극에 뜻을 두고 니혼대학 예술과로 편입했다. 일본 근대극의 산실인 쓰키치 소극장에 입단하여, 오사나이 가오루에게 연극을 배웠다. 오사나이 가오루는 러시아 연극의 거장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극 이론에 심취, 러시아까지 가서 연극을 배워온 인물로, 일본 사실주의(리얼리즘) 연극의 선구자였다.
홍해성은 귀국하여 극예술연구회를 조직, 신극운동을 벌였으며 동양극장으로 옮겨 연출과 연기를 지도했다.
황철은 홍해성의 지도 아래 연기력이 급성장했다. 홍해성은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개척자로 신파극의 과장된 발성과 동작을 배격하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 배어나오는 듯한 자연스런 연기를 강조했다. 극중 인물을 깊이 연구하여 개성을 창조해내라고 가르쳤다. 황철은 홍해성에게 정통 사실주의 연기를 배운 데다 천부적인 목소리까지 갖고 있어 독보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동갑내기 작가 임선규도 그의 성공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황철은 1936년 동양극장의 청춘좌가 공연한 임선규의 작품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홍도의 오빠 철수로 출연했다. 잘 알다시피 이 연극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황철은 단숨에 조선 최고의 배우로 떠올랐다. 극장 앞에 기생들이 탄 인력거가 몰려들었고, 공연이 끝나면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을 벌였다. 꽃다발과 값비싼 선물이 쇄도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인기배우 심영도 추월했다. 초기 동양극장을 대표하는 여배우는 차홍녀, 남자배우는 심영이었다. 심영은 잘 생긴데다 인텔리와 부잣집 아들 같은 분위기에 연기력도 있어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사랑에 속고… '를 계기로 황철이 확연하게 우위에 올랐다. 극중에서 심영이 악역인 홍도의 남편 영호역을 맡아 관객들의 미움을 산 반면에 황철은 홍도를 지켜주려는 오빠 철수역을 맡은 데다 연기력이 뛰어나 극찬을 받았던 것이다.
황철은 임선규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1936년 '인생무정'과 '추풍령', 1939년 '청춘극장' 1940년 '정열대지' 등 임선규 작품에 계속 출연했다. 임선규는 현장의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는데 특히 황철을 더욱 배려했다. 황철의 이미지에 맞게 맞춤형 캐릭터를 창조했고, 황철은 뛰어난 연기로 흥행을 성공시켰다.


극단 아랑이 1940년 무대에 올린 '김옥균'과 1941년 '동학당'도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극작가는 임선규였고, 황철은 여기에서도 주연을 맡아 대성공을 거뒀다.

이 무렵 승승장구했던 동양극장이 파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35년 배구자와 홍순언 부부가 세운 동양극장은 일본 유학파 연출가와 당대의 극작가, 배우가 모여 '검사와 여선생'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어머니의 힘' '단종애사' 등을 히트시켰다. 그러나 1937년 홍순언이 사망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지배인 최독견이 경영을 맡았으나 형편이 어려워져 1939년에 부도를 맞은 것이다.



극장 주인 배구자는 동양극장과 극단을 채권단에 넘겨버렸다. 이때 연출가인 박진은 "극단은 샀을지 모르지만 사람까지 산 것은 아니다."다며 분노했다. 박진의 말에 동조한 청춘좌 소속 배우들은 집단 탈퇴하여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연출가 박진과 배우 황철 차홍녀 양백명 서일성 이정순 김선초 문정복, 극작가 임선규 등이 아랑이라는 극단을 창단한 것이다.
황철은 극단 아랑을 주도했다. 출범 당시 자본을 댔으며, 엄청난 티켓 파워로 관객을 끌어 모았고, 공연 기획에 경영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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