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리 다 갖춘 남인수 판사 '기업분쟁 해결사'로
공인회계사 출신 전문성 앞세워
스마일게이트·하이브 '파격 판결'

공인회계사(CPA) 자격증을 가진 이색 이력의 부장판사가 굵직한 기업 소송에서 잇달아 파격 판결을 내리며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남인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사진)는 1995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재학 중 CPA 시험을 통과한 뒤 사법시험에도 합격했다. 2006년 판사로 임관해 수원지법·서울고법 등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기업 전담 재판부를 이끌고 있다.
남 부장판사는 지난 2일 미래에셋증권이 스마일게이트RPG를 상대로 낸 1000억원대 조기상환청구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스마일게이트RPG는 전환사채(CB) 전환권을 ‘부채’로 분류해 대규모 평가 손실을 인식, 상장 의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실적이 좋아질수록 평가손실이 커져 상장 의무가 소멸하는 순환 논리에 빠진다”며 회계 처리의 허점을 지적했다.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는 지분 희석을 우려해 상장을 고의로 미루는 창업자 관행에 제동을 걸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간의 이목이 쏠렸던 하이브·어도어 분쟁에서도 소신 판결이 나왔다. 남 부장판사는 민희진 전 대표가 낸 250억원대 주식 매매대금 청구 소송에서 하이브의 계약 해지 주장을 ‘추상적 위험’으로 일축하며 민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민 전 대표의 재선임 가처분이 기각되며 하이브 승소가 유력시됐던 관측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례적으로 2시간에 걸친 선고에서 카카오톡 대화 등 구체적 증거를 촘촘히 짚으며 하이브가 민 전 대표의 독립 추진 정황을 사전에 파악하고도 묵인했다고 판단했다.
기계적 판결을 벗어난 소송 지휘도 눈길을 끌었다. 위수령 국가폭력 피해자 배상 소송 선고 직후 “담당 판사로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고, 어도어와 뉴진스 다니엘 간 43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적극적인 조정을 권유했다.
남 부장판사는 2017년 사법농단 사태 당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 대표적 ‘소신파’로도 꼽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무·회계 전문성과 외부 논리에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바탕으로 기업 분쟁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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