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포항 영일 사방공원, 황폐한 모래언덕에서 ‘녹화 기적’까지

서의수 기자 2026. 4. 12. 17:1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국가 총력 사방사업…6300개 축구장 규모 복원
산사태 막고 숲 되살린 현장, 산림녹화 출발점 재조명
▲ 사방기념관 입구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실로 입장하고 있다. 서의수 기자

봄비가 그친 뒤 찾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 사방기념공원. 흐린 하늘 아래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정돈된 잔디와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은 평온한 공원이지만, 반세기 전 이곳은 비만 오면 흙이 쓸려 내려오고 모래바람이 날리던 황폐한 산지였다.

공원 중심부에는 당시 사업을 기념하는 자연석 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녹색 동판에는 영일 사방사업의 기록이 새겨져 있다. 글자를 따라 읽어 내려가자 1970년대 이곳에서 진행된 산림복구 사업의 규모가 드러났다.

▲ 공원 입구에 세워진 '사방기념공원' 표지석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서의수 기자

기념비에 따르면 영일 특수사방사업은 1973년부터 1977년까지 5년에 걸쳐 진행됐다. 사업 면적은 4538헥타르로 축구장 약 6300개 규모다. 연인원 360만 명이 투입됐고, 묘목 2400만 그루와 돌 224만㎥, 토사 230만㎥, 잔디 213만 단이 동원됐다. 당시 여건을 고려하면 국가 총력사업에 가까운 규모다.

▲ 영일 사방사업을 기념하는 자연석 기념비가 공원 중앙에 설치돼 있다. 서의수 기자

기념비 아래에는 "우리의 굳은 손길로 이룩한 이 기적을 후세에 이어받게 하라"는 취지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공원을 찾은 한 방문객은 "그냥 공원인 줄 알았는데 산림녹화의 역사 현장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 전시관 영상실에서 방문객들이 사방사업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서의수 기자

△산을 살리기 위한 사방사업

사방기념관 내부에는 사방사업의 개념과 유형을 설명하는 전시가 이어진다. 사방사업은 나무를 심는 데 그치지 않고 산사태와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구조물을 설치하고 식생을 복원하는 산림토목사업이다.

▲ 사방기념관 내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해설을 듣고 있다. 서의수 기자

전시 자료에 따르면 사방사업은 산지사방, 예방사방, 야계사방, 해안사방 등으로 나뉘며, 공법에 따라 구조물을 활용하는 기초사방과 나무를 심는 사방조림으로 구분된다. 한쪽에는 복구 전후 사진이 전시돼 민둥산이 숲으로 바뀐 모습이 대비됐다.

당시 사방사업이 필요했던 이유도 확인된다. 우리나라 산지의 약 56%가 산사태에 취약한 지형인데다 전쟁 이후 벌채까지 겹치며 1960년대까지 산림 황폐화가 심각했다. 산사태와 산불, 병해충이 주요 피해 요인으로 꼽혔다.

▲ 포항 영일 사방기념공원 언덕에 '사방기념공원' 글자가 조형수로 조성돼 있다. 서의수 기자

△산림녹화 정책의 상징 '영일'

1970년대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계기로 사방사업이 본격화됐고, 영일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광범위한 황폐지를 단기간에 복구한 사례로 이후 전국 산림녹화 사업 확대의 계기가 됐다.

이후 사방사업은 1980년대 농촌 개발과 연계됐고, 1990년대 이후에는 환경과 경관, 생태까지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2004년 이후에는 산림유역관리사업이 도입돼 재해 대응과 생태 관리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

영일 사방기념공원은 산림복구 현장을 넘어 역사문화 공간의 성격도 지닌다. 공원 조성 과정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유적이 발견됐으며, 석실묘와 석곽묘, 토광묘, 철기류와 토기류 등 약 270점의 유물이 확인됐다. 영일 사방준공비는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오늘의 숲이 전하는 의미

공원을 한 바퀴 돌자 완만한 산자락을 따라 조성된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잎이 스치며 잔잔한 소리가 퍼졌다.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 숲은 사람의 손으로 복구된 결과다.

공원 입구를 나서며 뒤돌아본 숲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 풍경 뒤에는 수백만 명의 손길과 수십 년의 시간이 쌓여 있다. 오늘의 푸른 산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이 다시 만들어낸 국토라는 사실을 이곳은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