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의 망상···돈 숭배·권력 과시·전쟁 그만” 트럼프 간접 겨냥한 미국인 교황

김희진 기자 2026. 4. 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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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4세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교황 레오 14세가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에 나선 11일(현지시간) “전쟁의 광기”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상 첫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는 최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전쟁 비판’ 메시지를 잇달아 내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특별 기도회에서 “멈추시라. 이제 평화의 시간”이라며 “재무장을 계획하는 테이블이 아니라 대화와 중재의 테이블에 앉으라”고 호소했다. 이어 “자기 자신과 돈에 대한 우상 숭배는 이제 그만! 권력 과시도 이제 그만! 전쟁도 이제 그만!”이라고 했다.

레오 14세는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조차 죽음의 담론에 휘말리고 있다”며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고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전능에 대한 망상”에 맞서 기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레오 14세가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날 메시지는 종교적 명분을 내세우며 전쟁을 정당화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관리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AP는 분석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느님은 선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우리 편에 서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번 전쟁을 “하느님의 섭리 아래 수행되는 전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 등으로 표현하곤 했다.

레오 14세는 미·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미·이란 전쟁 초기에는 공개적인 비판을 자제해왔으나 최근 발언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그는 전날 엑스에도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며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고 오늘날에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 편에 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합의를 압박하며 “하나의 문명이 사라질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12일에는 “사랑하는 레바논 국민들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다”면서 “인도주의 원칙은 전쟁의 참혹한 영향으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수반한다”고 말했다. 특정 국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이란 전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 사이 긴장이 극에 달했다”며 “이는 수십 년 만에 교황과 미국 대통령 사이 벌어진 가장 날카로운 공개 갈등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레오 14세는 미·이란 전쟁 발발 전부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 등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트럼프 정부와 갈등을 겪어왔다. 그는 오는 7월4일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달라는 트럼프 정부 요청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레오 14세를 상대로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매체 ‘더 프리 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1월 레오 14세가 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의 연설을 한 직후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주미 교황청 대사인 크리스토프 피에르 추기경을 국방부로 불러 강하게 질책했다. 콜비 차관은 당시 14세기 교황권이 왕권에 굴복한 ‘아비뇽 유수’ 사건을 거론하며 “미국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다”며 “교회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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