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도입 한 달째 전원재판부 회부 ‘0건’…‘1호 사건’은 언제쯤?

임현경 기자 2026. 4. 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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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성동훈 기자

법원 재판을 헌법재판소가 취소할 수 있는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한 건도 본안 심사대에 오르지 못했다. 헌재가 사전심사에서 무더기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은 빗나갔다. 이제는 ‘기본권 보장’이라는 재판소원의 입법 취지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1일까지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은 총 384건이다. 헌재 지정재판부는 지난 7일까지 세 차례 사전심사를 열어 이 중 194건을 심리했고 전부 각하했다. 헌법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헌재 지정재판부는 사전심사에서 전원 일치로 사건을 각하할 수 있다.

헌재 “재판 불복 넘어 기본권 침해 소명돼야”

헌재는 형식적 요건을 채우지 못한 사건들은 모두 각하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청구기간(법원 재판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을 넘기거나,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고 재판소원을 청구한 사건들이다. 최소한 대법원판결까지 모두 거친 뒤, 판결 확정 30일 이내 청구한 사건만을 헌재가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형식적 요건에 더해 ‘기본권 침해’ 등 청구 사유도 엄격히 따졌다. 재판소원의 청구 사유는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법률이 정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헌법·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로 제한된다.

헌재는 재판소원 각하 사건 194건 중 128건(66%)을 ‘청구 사유가 미비하다’며 각하했다. 본안 판단을 받으려면 단순히 법원이 적법 절차를 위반하거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기본권 침해를 어느 정도 소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한 형사 피고인이 ‘체포 과정이 위법하므로 유죄 판결을 취소해달라’고 낸 재판소원 사건에서 헌재는 “재판 불복을 넘어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소명해야 한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한 장영하 변호사와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 협박 사건의 구제역(본명 이준희)이 낸 재판소원도 단순 재판 불복은 청구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헌재의 엄격한 잣대를 두고 기본권 보장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소원 도입 초기 몰려든 사건을 사전심사 단계에서 털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광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당사자의 미진한 주장도 직권으로 살피는 경향이 있었는데 재판소원에선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기본권 침해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각하하기 전 보정명령을 내려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1호 심리 사건’은 표현의 자유 사건으로?

헌재가 본안 회부 사건을 고심하면서, 어떤 사건이 ‘1호’로 사전심사를 통과할 지 관심이 쏠린다. 법원관계자들은 헌재가 재판소원을 헌법심으로 명확히 구분하자 우선 안도하면서도 본안 판단까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수도권 법원의 부장판사는 “헌재가 사전심사를 엄격히 하는 것은 헌법심만을 담당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여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본안심리에 들어가서 법원이 이미 판단한 사실관계와 법률해석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에선 매주 나오는 헌재 결정을 분석하면서, 사전심사 문턱을 어떻게 하면 넘을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박성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대법원판결까지 받은 이들은 재판소원 청구를 한 번씩 고민하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 헌재 결정을 봤을 땐 법원 판단에 대한 단순 불복은 각하되므로, 기본권 침해나 헌법소원 취지에 맞춰 주장을 새롭게 구성하는 식으로 재판소원을 청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건을 먼저 판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선거사건 등으로 논쟁이 많았던 데다가, 충돌하는 법익과 기본권 침해 정도가 사건마다 천차만별이라 법원 판단에 개입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재판취소 결정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내려졌다. 1958년 내려진 이른바 ‘뤼트 결정’으로 독일 법원은 나치에 부역한 영화감독에 대한 불매운동을 주도한 언론인 에리히 뤼트에게 금지를 명령했지만, 독일 연방헌재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법원 판결을 취소했다.

헌재 재판관들은 매주 지정재판부 평의를 마친 뒤에도 따로 모여 재판소원 사건 처리 기준 등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경력 15년 이상의 중견 헌법연구관 8명으로 전담 사전심사부를 구성한 데 이어, 다른 연구관들도 재판소원 업무에 매달리는 중이다. 헌재는 올 상반기 내로 헌법연구관 20명, 사무처 직원 18명도 추가 채용할 예정이다.

임현경 기자 hyl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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