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의 도시 … 벚꽃에 설레고, 야경에 취하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946만명에 달한다. 인기 도시인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뿐 아니라 많은 지방 소도시에도 한국인의 발길이 닿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곳 가운데 하나는 홋카이도 남단의 항구도시 하코다테다. 이곳은 인기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100만달러의 펜타그램'과 영화·드라마 '골든 카무이'의 배경이 되면서 '성지순례'로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제주항공이 인천~하코다테 직항 노선을 주 4회 편성으로 신설하면서 한국에서 찾는 방법도 수월해졌다. 홋카이도의 핵심 관광지인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편도로 3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당일치기 관광은 쉽지 않고 시간 여유를 갖고 이동하는 편을 추천한다.

여행의 시작은 고료카쿠 타워
3월에 찾은 하코다테의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그 속에는 묘한 설렘이 있었다. 눈이 녹기 시작한 하코다테의 3월은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서 있었다.
여행의 출발점은 하코다테의 '별'을 볼 수 있는 '고료카쿠(五稜郭) 타워'다. 2006년 완공된 이곳은 지상 90m 지점에 2층 구조의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별 모양 성곽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 오각형 요새는 1864년 세워진 서양식 성곽 고료카쿠다. 유럽의 '스타포트(별 모양 성채) 형식'을 받아들였지만, 실제 전투용이라기보다 막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1869년 막부군과 신정부군이 최후의 전쟁을 치른 일본 내전인 보신전쟁의 마지막 무대이기도 하다.
타워 운영사에 따르면 이곳의 연간 방문객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성지순례'와 함께 최근에는 대형 유람선이 입항하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고료카쿠는 성곽을 둘러싼 1500여 그루의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4월 말에서 5월 초 개화를 하는데 이때에는 성곽 주변 잔디밭에서 칭기즈칸 요리 축제를 포함해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지구 온난화로 최근 10년마다 개화가 평균 1~2일씩 빨라지고 있어 만개한 벚꽃 시즌에 맞추기는 쉽지 않다.
겨울철에는 '호시노유메(별의 꿈)'가 볼만하다. 1.8㎞ 성곽 해자를 따라 2000개의 전구로 완성한 일루미네이션 이벤트다. 시민들이 500엔씩 모아 만든 빛의 성곽은 이 도시가 관광으로 미래를 모색해온 시간을 상징한다.
고료카쿠 안쪽에 복원된 하코다테 '봉행소(부교쇼)'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에도 막부 말기에 성곽 내부에 설치된 관청인데 보신전쟁 이후 해체됐다가 2010년 당시 전통 건축 기법으로 복원된 곳이다.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막부 말기 일본 관청 집무실의 모습과 역사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곳곳에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당시 관리와 병사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재현한 곳도 있다.

백만달러 야경의 무대, 하코다테 산
해 질 무렵에는 하코다테산으로 향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34m의 정상에 오르면 하코다테의 진짜 얼굴이 펼쳐진다. 양쪽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 덕분에 도시의 불빛은 마치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두 갈래의 빛줄기처럼 뻗는다.
오른편으로는 하코다테만과 항구의 주황빛 조명이, 왼편으로는 쓰가루 해협 쪽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백색 불빛이 대비를 이룬다. 중앙의 시가지는 격자형 도로를 따라 촘촘히 빛나며, 항구에 정박한 선박의 불빛이 점점이 떠 있다.
공기가 맑은 3월에는 빛 번짐이 적어 윤곽이 또렷하고, 날씨가 좋으면 해협 너머 아오모리 지역의 희미한 불빛까지 식별된다. 그래서 이곳의 야경은 흔히 '백만달러 야경'이라 불린다. 단순히 화려해서가 아니라 지형이 만들어내는 입체적 구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마지막 무대가 이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전망대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곳곳에서 코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코다테에서 1박을 한다면 꼭 찾아볼 곳이 '아사이치(아침시장)'다. JR 하코다테역 바로 옆에 250여 개 점포가 모여 있는 이 시장은 1945년 전후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새벽 5시 무렵 문을 열어 정오쯤이면 문을 닫는 '아침 전용 시장'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수조에서 헤엄치는 다양한 해산물이 눈길을 끈다. 시장 안 식당에서는 취향대로 해산물을 골라 밥 위에 얹는 가이센동(해산물덮밥)도 즐길 수 있다. 홋카이도산 밥 위에 성게, 연어알, 게살을 올려 나만의 덮밥을 완성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인들은 대부분 수십 년째 가업을 이어온 이들로, 항구도시 하코다테의 생활력이 그대로 묻어난다.
하코다테에 왔다면 의외의 명물도 맛봐야 한다. 바로 지역 햄버거 체인 '러키 피에로'다. 1987년 창업해 하코다테와 홋카이도 남부에만 매장을 둔 토종 브랜드로, 여행객 사이에서는 '하코다테 버거'로 통한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중국식 닭튀김을 넣은 차이니스 치킨버거. 달콤짭짤한 소스와 바삭한 치킨, 큼직한 양배추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낸다. 매장마다 인테리어 콘셉트가 다른 것도 특징으로, 산타클로스 장식이나 서부극풍 장식 등 다소 과장된 장식이 오히려 즐겁다.

전통과 대중성이 공존하는 장소
항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붉은 벽돌 건물이 줄지어 선 '가네모리 아카렌가 창고'가 나온다. 메이지 시대 상인 와타나베 구마시로가 1887년에 세운 창고에서 출발한 이 공간은, 대화재를 견딘 내화 건축의 상징이다. 두꺼운 벽돌과 회반죽, 창을 최소화한 구조는 화재와의 싸움의 흔적이다. 현재는 다양한 식당과 잡화점, 갤러리가 들어서 항구 산책의 중심이 된다.
항구 안쪽에 있는 가네모리 상점은 1880년 건물이다. 당시 외국인을 상대로 양복지와 통조림, 서양술 등을 팔던 상점이었다. 1907년 대화재 속에서도 살아남아 14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다. 2층 아치형 창과 일본식 토벽 구조가 결합된 '화양절충'(일본풍과 서양풍 양식의 조화) 건축은, 개항 도시 하코다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먹거리는 여행의 또 다른 축이다. 삿포로 맥주의 붉은 별은 개척사의 상징에서 유래했다. 항구의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 한 모금에는, 개항과 근대화의 시간이 녹아 있다.
하코다테는 거창한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별 모양 성곽과 붉은 벽돌, 바다와 산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풍경은 이곳만의 것이다. 겨울의 끝자락, 봄의 문턱에서 만나는 3월의 하코다테는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이 도시가 품어온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곱씹어보길 권한다.
[하코다테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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