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철 칼럼] ‘한은사’ 담장 허문 ‘미스터 오지랖’ 이창용의 유산
교육·노동·복지 등 '나쁜 균형’에 공론화 '메스'
정권 눈치 보지않는 싱크탱크 역할... 외부소통 '신선'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대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인사'였다. 이창용은 문 대통령 퇴임 2개월을 앞두고 제27대 한은 총재에 지명됐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서 못마땅한 '시선'이 일부 있었지만 임명장을 받는데 걸림돌은 없었다.
'한은사'(韓銀寺)로 불리며, 입조심, 몸조심하던 한국은행의 행보는 이창용의 등장으로 180도 달라졌다. 특히 그의 적극적인 대외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담론이 될 만한 화두로 손색이 없었다. 이창용은 문제 해결을 위한 파격 제안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모순을 '나쁜 균형'이라 진단하며 금기시되던 의제들을 공론화했다.
수도권 인구 집중과 저출산의 근원이 대학 입시 경쟁에 있다고 본 그의 문제 의식은 발군이었다. 이창용은 해법으로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안했다. "성적순이 유일한 공정은 아니다"라는 그의 발언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나아가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 시켰다"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돌봄 인력난 해소를 위한 카드도 꺼내 들었다. 외국인 노동자 활용과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라는 논쟁적 대안이었다. 비록 불발됐지만 정책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이창용은 금융시장의 패닉을 막기 위해 유동성 무제한 공급이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데 앞장섰다. 실제 계엄 당일 사의를 표명하려던 부총리를 만류해 경제팀의 붕괴를 막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경제부총리 부재 시 이례적으로 한은 총재가 F4(기재부, 한국은행, 금융위, 금감원) 회의를 주재하며 시장 안정의 최후 보루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창용은 역대 한은 총재 중 처음으로 기재부를 방문해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과거 기재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격하되던 한은이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을 굳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보였다. 세간에서는 재정-통화당국 간의 정책 공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명 의료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줘 울림이 컸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연명 의료 중단을 결정했던 개인적인 아픔을 언급하면서 이를 방치하면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연명 의료가 2070년 17조 원의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창용은 또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리스크에 대비해 법정 정년 연장보다 '임금체계 개편을 동반한 퇴직 후 재고용' 모델을 제시했다. 더불어 지역 간 인구 이동이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지역 거점도시 중심의 균형 발전을 촉구했다.
이 모든 발언들이 전임 총재시절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창용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일부에서 그를 '미스터 오지랖'이라 부르며 한은 총재의 역할을 '한은사 주지'로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이창용은 취임 당시부터 한국은행의 역할이 통화정책을 넘어 국가의 '싱크탱크'로 확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색에 짙게 물든 국책 연구소가 신뢰를 잃어버린 까닭이다.

그는 '본업'에서도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취임 직후 두 차례 빅스텝(기준금리 0.5%P인상)을 포함한 강도 높은 긴축 정책으로 물가 수준을 2%대로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실의 기준금리 선제적 인하 주문에 맞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킨 두둑한 맷집도 보여줬다. 이를 통해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유지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후임 신현송 총재 후보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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