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전남 신안 우이도, 바람이 빚은 모래언덕 [앵+글로 본 남도 세상]

김덕일 2026. 4. 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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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도 사구

'섬에 새긴 바람의 흔적, 신안의 사구'라는 주제로 신안군 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주관한 연수에서 우이도에 처음 첫발을 내디뎠다. 그 강렬했던 첫인상 이후로도 더 이곳을 찾았다. 목포에서 뱃길로 64km, 신안 도초도에서도 한참을 더 달려야 닿는 섬, 우이도(牛耳島).

섬의 서쪽 끝에 쫑긋하게 솟은 두 개의 반도가 마치 소의 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부터 마을 사람들이 '소구섬' 혹은 '우개도'라 정겹게 부르던 이곳은, 거친 파도와 바람이 깎고 다듬은 자연의 예술 작품이자, 손암 정약전과 문순득이 만나 더 넓은 세상을 이야기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이도 사구
우이도 사구

# 바람이 쌓아 올린 시간의 높이, 풍성사구

우이도의 얼굴은 단연 풍성사구(모래언덕)다. 돈목해변과 성촌해변 사이,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거대한 모래 폭포는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특히 이른 아침 해무를 머금은 사구의 모습은 더없이 신비롭다. 겨울철 북서계절풍이 수백 년간 실어 나른 모래는 높이 50m에 달하는 거대한 해안사구를 완성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사선으로 파고드는 사광(Side Light)에 드러난 모래언덕의 질감은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한다.

한때 무분별한 탐방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복원 상태에 따라 설치된 목책 탐방로와 우회로를 통해 그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다. 한결 건강해진 사구의 허리춤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책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매일 결을 바꾸는 모래의 역동적인 생동감이 전해진다. 약 100~200년 전부터 퇴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형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과 함께 숨 쉬고 있다.
우이도
우이도
우이도

# 돈목해변: 비단결 같은 모래와 생명의 터전<----돈목해변 사진

사구 아래 펼쳐진 돈목해변은 비단결처럼 고운 모래로 이름나 있다. 발자국조차 깊게 패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조밀한 이 백사장은 '달랑게'의 대규모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인기척에 수천 마리의 게가 일제히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영화 <가을로>의 배경이 되었을 만큼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곳은, 특히 물이 빠질 때 모래 위에 형성되는 물결무늬(Ripple Mark)가 일몰의 잔영과 겹치는 순간 한 폭의 추상화로 변한다. 해변 끝 방파제에서 바위 지형과 함께 노을을 담거나, 해변의 어둠 속에 점으로 남은 사람의 실루엣을 담아내면 평화로운 섬의 정취가 사진 속에 진하게 배어 나온다.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 우이도는 과거 소흑산도(小黑山島), 문순득과 손암 정약전

우이도는 과거 '소흑산도'라 불리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대흑산도와 함께 '흑산도'라는 지명으로 묶여 불렸는데, 그중 상대적으로 작은 섬이라 하여 그런 별칭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역사적으로도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바로 우이도 출신의 홍어 장수 문순득과 손암 정약전의 만남이다.

1801년, 홍어를 사러 나갔다 표류하여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를 거쳐 3년 2개월 만에 귀환한 문순득. 당시 우이도에 유배 중이던 정약전은 그의 구술을 세밀하게 기록하여 표류기인 『표해시말(漂海始末)』을 남겼다. 흔히 『자산어보(玆山魚譜)』 하면 흑산도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 사상적 실마리는 사실 우이도에서 시작되었다. 문순득의 표류기를 정리하며 다져진 '관찰과 기록'의 습관이 훗날 흑산도에서 불멸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손암은 유배 생활의 상당 부분을 이처럼 우이도와 흑산도를 오가며 보냈다.
진리 문순득
진리 돌담길
성촌해변

# 마을 이름마다 서린 정겨운 이야기들

우이도의 마을 이름에는 저마다의 삶과 지형이 녹아 있다. 관문이자 가장 큰 마을인 진리(鎭里)는 조선시대 수군 진(鎭)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진말'로도 불린다. 이곳의 상판강(옛 선창)은 거대한 석축으로 쌓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선창으로, 조석 간만의 차를 극복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피사체다. 마을 언덕에는 바다를 향해 선 문순득의 동상과 복원된 생가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증언하고 있다.

돈목(豚項) 마을은 해변으로 멧돼지를 몰아 사냥했다는 '돼지 목'의 전설을 품고 있고, 성촌(星村) 마을은 지형이 별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촌해변은 모래언덕 너머 북쪽에 자리한 호젓한 곳으로 비단조개가 많기로 유명하다.

앵글에 담긴, 혹은 새의 눈으로 바라본 우이도 모래언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색에 잠기게 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오가는 길은 비록 고단할지라도, 그곳에서 얻는 건강한 설렘과 영감은 다시금 섬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된다. 바람이 결을 바꾸는 가을쯤, 다시 카메라를 메고 우이도로 떠나야겠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