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단재판, 제주 4·3 사건, 그리고… 끔찍한 충견의 계보 [영화로 읽는 세상]
장미의 이름⑤
영화 속 참담한 이단재판
국가가 국민 도륙한 4 · 3 떠올라
진실과 권력 이해관계 충돌할 때
권력은 어떻게 진실 폭압하는가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가장 참담한 장면은 지적ㆍ신체적 장애를 동반한 민초 살바토레와 몸 파는 이름 없는 소녀, 그리고 수도사 한 명이 '이단 재판'에 회부돼 나란히 화형대 틀에 매달려 불타는 장면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희생자는 억울함조차 꺼내지 못하는 이들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2/thescoop1/20260412101314664fisz.jpg)
도미니코 교단은 이교도들을 개종하기 위해 투철한 교리로 무장한 교단이었는데, 나중에는 이단 심판으로 특화해 버려서 '주님(Domini)의 개(Canes)'라고 조롱과 원망의 대상이 됐던 교단이기도 하다.
베르나르도 귀도는 42명을 화형에 처했던 것으로 기록되는 역사상 가장 악명을 떨쳤던 이단 심판관이다. 베르나르도 귀도 정도의 '헤비급' 이단 심판관이 직접 나서는 사건에는 항상 중세교회의 권력투쟁과 교파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의 수도원은 베네딕토(Benedictus) 교단 소속으로 '엄격한 질서와 규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모든 문헌의 보존'을 사명으로 한다. 따라서 중세 최대의 장서관藏書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청빈淸貧(Pauperitas)'을 최우선의 가치로 하는 '프란체스코' 교단 소속의 윌리엄 수사가 살인사건을 파헤치러 이 수도원에 와서 점차 수도원의 내밀한 장서관으로 수사망을 좁혀가자 수도원은 긴장한다. 자신들이 교회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는 증거가 그 장서관에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 문헌들은 봉인돼야만 한다. 윌리엄은 과거에 교황청과 청빈 논쟁을 벌이다 주님의 개들이 주관하는 이단재판에 회부됐던 인물로 설정되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윌리엄 수사는 동시대 실존인물이었던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kham)'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단재판에 회부됐던 윌리엄 오캄은 '예수님은 가난했는데 교황청과 교황이 이처럼 부유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난 것이며 이단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교황청'이라는 대담무쌍한 논쟁을 펼쳤던 수도사이지 학자였다.
교황청과 결탁한 수도원이 윌리엄을 봉인된 문헌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윌리엄을 다시 이단 재판에 회부해 처단하는 일이다. 교황청은 당시 최고의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Bernardo Guido)를 수도원으로 급파해 다시 이단 심판소를 연다.
![고계순 제주 4·3 희생 유족이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8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2/thescoop1/20260412101315978pipw.jpg)
윌리엄을 더 이상 무리하게 몰아붙이거나 처벌한다면 교단 내부의 '청빈 논쟁'이 다시 불거져 득 될 것이 없다. 교황청은 누가 봐도 결코 청빈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번 뽑은 칼을 거두기에도 면이 서지 않는다.
베르나르도 귀도는 느닷없이 수도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쇄살인'이 악마의 '흑마술' 때문이라고 선언하면서 난데없이 살바토레(론 펄먼 분)라는 '민초'와 레미지오라는 수도사를 잡아들인다. 살바토레는 수도원 근처에 '거주'라기보다 '서식'하는 지적ㆍ신체적 복합 장애인이다.
레미지오라는 수도사는 과거에 타락한 교황청 체제를 급진적으로 타도하려다 일망타진된 '돌치노(Dolcino)' 교단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또한 마을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한 언어장애 소녀도 끌려온다.
우선 살바토레는 '이단의 마법사'로 걸리기 딱 좋은 조건을 갖췄다. 1. 몰골이 악마처럼 흉측하다. 2. 라틴어ㆍ이탈리아어ㆍ스페인어 등등 모든 언어를 뒤섞어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린다. 그것은 마법의 주문이라 할 만하다. 3. 지적 능력이 전무한 살바토레는 과거에 돌치노파가 폭동을 일으켰을 때 영문도 모르고 축제에 따라나서듯 횃불을 들고 따라간 적이 있다. 4. 살바토레는 마을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한 소녀의 몸을 사기 위해 '화대花代'로 '검은 고양이'를 죽인 고기를 들고 찾아갔다.
검은 고양이야말로 이단의 마법사가 부리는 흑마술의 결정적인 증거다. 레미지오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교황청 타도를 외쳤던 세력은 씨를 말려버린다는 교황청의 결의를 보여주기에 적당한 타깃이다.
이단 심판정에 선 살바토레는 자신의 혐의도 이해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애처럼 한껏 기분이 '업(up)'돼 그 특유의 알아들을 수 없는 온갖 말들을 쏟아낸다. 레미지오는 혐의를 부정하지만 고문을 가하려 하자 서둘러 "내가 죽였다. 악마가 시켜서 모두 내가 죽였다"는 자백을 쏟아낸다.
어차피 화형은 정해져 있는데 끔찍한 고문까지 당하고 화형당하는 건 바보짓이다. 몸 파는 언어장애 소녀는 심판정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검은 고양이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이 선고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단 재판이라는 것은 진실이 권력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때 권력은 어떻게 진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폭압하는지 고발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청빈의 가치를 정면돌파하거나 반박하지 못하고, 그 논쟁을 피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악마'로 몰아 죽이면서 공포로 권력을 유지한다.
![영화 속 이단 재판은 진실이 권력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때 권력은 어떻게 진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폭압하는지 고발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2/thescoop1/20260412101317282ukso.jpg)
그 한가운데 한국판 베르나르도 귀도와 같은 주님의 개에 해당하는 '권력의 개' 김창룡 특무대장이 있었고 노덕술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베르나르도 귀도와 똑같이 남로당 세력 본진은 언감생심 건드릴 엄두도 못 내고 살바토레나 언어장애 소녀, 혹은 레미지오처럼 단순가담자나 영문도 모르는 민초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인물들이다.
그 '거룩한 계보'는 민주화운동을 '빨갱이 소동'으로 몰고 간 고문형사 이근안으로까지 면면히 이어진다. 권력쟁취를 위한 '이념의 대립' 사이에 낀 무고한 민초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직어 고문하고 학살하는 권력의 구조와 중세의 이단 재판의 구조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평행이론이다. 그 '거룩한 계보'가 지금은 정말 끊겼을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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