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가스공사] 양우혁의 “정성우… 아니, 정우성!” 현실적인 말실수, 농구 선수가 풀어낸 슬램덩크 이야기 ③

정다윤 2026. 4. 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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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다윤 기자] 대구 한국가스공사 양우혁은 슬램덩크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냥 물건을 두는 법이 없었다. 하나를 놓아도 이유가 있었고, 익숙한 물건도 자기 식으로 다시 보이게 만들었다. 방을 채운 건 소품이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취향과 기억, 그리고 농구를 대하는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먼저 시선을 붙드는 건 만화 슬램덩크였다. 방 한쪽에 예쁘게 쌓아둔 만화책부터 심상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해놓으려고 꾸며놨어요. 그냥 만화책이 아니라 스페셜 에디션이에요. 원래 오리지널판이 31권인가 그렇거든요? 그건 또 흑백인데, 이 에디션은 컬러가 섞여 있어요. 그리고 24권이에요. 슬램덩크도 아버지가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권유로 읽게 됐어요."

이쯤 되면 슬램덩크 홍보대사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왠지 기사에 ‘#광고’라는 타이틀을 써야 할 법했다.

양우혁은 농구인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말을 인터뷰 내내 몇 번이고 꺼냈다. 순간 원작자보다 더 진심인 사람 같기도 했다. 양우혁은 슬램덩크가 왜 좋은지 묻자 주저 없이 농구 묘사부터 이야기했다. 실제로 코트를 뛰는 선수의 눈으로 봤을 때 더 깊게 와닿는 지점들이 분명해 보였다.

"정말 와… 너무 잘 표현했더라고요. 농구인들이 뛸 때랑 뛰기 전 감정들이랑 묘사를 미친 수준으로 만들었더라고요. 작가분(이노우에 다케히코)도 농구하셨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잘 표현한 것 같고 너무 재밌게 봤어요."

좋아하는 장면을 묻자 잠시 고민하던 양우혁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너무 많은데."
"그거 좋아요. 정성우... 아잇 정성우래(웃음). 정우성이요!"

가스공사에는 정성우가 있고, 슬램덩크에는 정우성이 있다. 헷갈릴 만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작품 속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등장인물 윤대협이 정우성을 정성우라고 잘못 부르는 대목 말이다. 양우혁은 그 장면이 좋았다며 이유까지 또렷하게 설명했다.

"윤대협이 정우성을 정성우라고 말한 게 좋았어요. 윤대협의 맑고 단순한 성격이라고 해야 되나? 그 이미지를 그 장면에서 보여준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서태웅이 정우성을 만났는데, 이름이 다른 걸 그때 안 거죠. 서태웅이 '정우성이잖아… 멍청아!!'라고 한 것까지 좋아요."

좋아하는 캐릭터 이야기가 나오자 양우혁의 표정은 더 또렷해졌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단연 서태웅이었다. 말수가 적고 쿨한데, 속으로는 농구에 완전히 미쳐 있는 인물. 양우혁이 좋아하는 결도 그쪽에 가까웠다.

"정우성이 서태웅이랑 뛸 때 본인은 미국에 간다고 얘기했을 때 대사도 좋아요. 거기서 서태웅이 맞받아치면서 ‘오늘…, 여기서 널 쓰러뜨리고 간다!’고 얘기한 게 있어요. 서태웅의 자존심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요."

이쯤 되니 취재진도 어느새 인터뷰가 아니라 덕토크(?)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잠깐 만화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듯했다. 양우혁도 하고 싶은 말이 꽤 많아 보였다. 다만 어느 순간 스스로 “너무 투머치한데…”라고 하고 브레이크를 밟는 눈치였다. 취재진이 “왜요? 너무 좋은데요”라고 반응하자, 다시 속도를 냈다.

양우혁이 좋아한 장면은 이랬다. 해남과 능남의 맞대결에서 변덕규가 상대 에이스에게 "현내 넘버원의 간판은 오늘까지다. 이 경기에서 반드시 바꿔주지"라고 말한 장면. 상대 이정환이 "네겐 무리다, 변덕규"라고 받아치자 변덕규는 "내가 아니다. 윤대협이 한다"라고 답한다. 양우혁은 동료에 대한 신뢰를 먼저 내세운 대목이 오래 남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변덕규의 말이 윤대협에 대한 신뢰라서 너무 좋았어요." 언젠간 ‘양우혁이 한다’는 말을 들을 날이 오길.

그러나 양우혁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서태웅이다. "서태웅이 제일 좋아요. 그냥 멋있잖아요. 에이스고 말 없고 성격도 쿨하고요. 롤모델 같기도 해요. 그런 스타일 좋아하거든요. 안 하는 것 같은데 농구 잘하고 싶어서 미쳐 있고. 생긴 것도 멋있잖아요(웃음)."

슬램덩크를 향한 애정은 방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팬들이 지나가지 못하는 구역, 대구체육관 복도에는 슬램덩크를 비롯한 여러 피규어와 액자가 전시돼 있다. 취재진도 그 공간을 보고 괜히 가슴이 웅장해졌는데, 양우혁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액자들이랑 너무 멋있어서 보고 예쁘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슬램덩크를 보면 농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거든요. 피규어 같은 건 갖고 싶더라고요(웃음). 제가 피규어를 좋아하는데,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피규어 많이 사서 꾸며놓는 거거든요."
▲홍우찬(삼일고 3학년), 양우혁(가스공사), 최영상(연세대 1학년)

슬램덩크 얘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후배 이야기로도 이어졌다. 삼일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홍우찬이 최근 ‘제63회 춘계 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해남대회’에서 이른바 ‘개똥슛’을 선보인 장면이 있었다.

슬램덩크에서 산왕고 정우성이 강백호의 블록을 피하기 위해 높게 띄워 올린 스쿱샷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었다. 홍우찬 역시 특유의 스피드와 드리블로 수비를 벗겨낸 뒤, 블록을 피해 레이업을 성공시켰다.

"바스켓볼 로맨티스트라는 소셜 미디어에서 봤어요. 개똥슛이랑 많이 비슷하죠. 그게 (홍)우찬이가 되게 잘하는 슛이거든요. 제가 배우고 싶어요. 우찬이가 그 감이 정말 좋아요. 그 슛을 넣었던 우찬이 영상을 제가 스토리에 올렸거든요. 우찬이 샤라웃 한번 하겠습니다(웃음)." 후배를 향한 애정도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이제 다시 양우혁의 자취방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방 안에는 슬램덩크 말고도 눈길을 붙드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침대 머리맡에 놓인 유니폼 세 장은 단번에 ‘특별 취급’ 받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쉽게 못 구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서요. (첫번째부터)조던 유니폼이고, 커리 캠프에서 친필 사인이에요. 아무나 이건 못 구하는 거예요. 이름까지 못 받은 이유는 사람이 너무 많고 압사당할 뻔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거는 리딤팀인가? 나라별 국가대표마다 이름이 붙어요. 르브론 제임스 국가대표 유니폼인 것 같은데 아빠가 당시에 산 걸로 알고 있어요."

하나하나 사연이 있었다. 단지 비싼 기념품이라서가 아니라, 어렵게 얻었거나 아버지의 시간이 함께 얹힌 물건들이었다. 좋아하는 걸 모아두는 방식에도 양우혁만의 결이 있었다. 침대 옆 농구공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소박했다. "농구공은 그냥 누워서 가지고 놀아요(웃음)." 양별(반려견)의 장난감이 아니었다.

방 안에는 책도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난 후, 한참 뒤에 이 사진을 보여줬다. 취재진도 몰랐다.  “아니 근데 이거 눈 감았는데요? 근데 상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대로 쓰게 된 장면도 있었는데, 그 옆에 놓인 책에는 또 다른 사연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이현중(나가사키) 선수 아버지께서 주셨어요. 삼일고 부장 선생님이시거든요. 제가 드래프트 나간다고 했을 당시에 책을 선물해주셨어요.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되는데, 늘 100페이지 넘기기가 좀 힘들더라고요(웃음). 습관을 들여야 될 것 같아요. 너무 감사히 받아서 꼭 정독하겠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양우혁의 방엔 귀멸의 칼날 퍼즐 박스도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가에도 하나가 있었다. 이미 맞춰둔 거의 완성본이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구로 들고 오고는 싶은데, 이 녀석이 얌전히 따라올 상이 아니었다. 잘못 옮겼다간 추억이 아니라 파편만 도착할 수도 있는 상황.

결국 양우혁은 ‘가져오고 싶음’과 ‘깨질 것 같음’ 사이에서 조용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좋아하는 건 곁에 두고 싶고, 현실은 포장 난도가 너무 높다. "어떻게 가져올지 생각하고 있어서 냅뒀습니다. 이것도 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웃음)."

기록하는 습관도 있었다. 5년 동안 채워가는 Q&A 책이었다. 하루하루의 마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두는 방식이었다. 농구일지에 이어 이 책까지, 양우혁은 생각보다 꾸준히 자신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시크릿 노트다.
"이건 Q&A 책이에요. 질문을 하루에 하나씩 주는데 5년 동안 쓰는 거예요. 같은 질문에 1년 뒤에 똑같이 쓰는 건데 기록하는 것도 있어요. 그때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도 있어요. 생각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내용은 비밀이에요. 설인아 님이 하는 거 보고 저도 매일 쓰고 있어요."

하지만 양우혁의 방이 늘 완벽하게 정리된 쇼룸 같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옷더미 아래에는 인화된 사진들이 꽤 많이 흩어져 있었다. 처음엔 이것도 감성 포인트인 줄 알았다. 하도 방을 잘 꾸며놔서 사진까지 일부러 툭 던져둔 연출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건 정말 아직 자리를 못 찾은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을 어디 전시해두려다가 구상을 못 해서 잠깐 냅둔 거예요. (진짜 꾸민 게 아닌가요?) 정말 그냥 냅둔 겁니다(웃음)."

특히 삼일고 시절 사진에서는 한 번 더 눈길이 멈췄다. 있을 때는 몰라도 지나고 나면 더 크게 다가오는 시간들이 있다. 그 사진들이 꼭 그랬다.
"이때가 정말 삼일고에서의 대회 막바지였어요. 그래서 제가 한번 찍자고 해서 찍었거든요. 마지막이고 해서 찍자고 했습니다. 항상 지나고야 느끼는 게 있어요. 중학교 올라가서도 초등학교가 좋았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중학교가 좋듯이요. 고등학교 때도 빨리 프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등학교가 그립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너무 좋지만 괜히 추억도 생각나고 지나온 시절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사진 얘기가 삼일고로 이어지자, 양우혁은 옷방에 있던 삼일고 유니폼을 직접 꺼내 들었다. 한동안 입지 않았던 유니폼을 오랜만에 주섬주섬 걸쳤다.
"‘영광의 시대였다’고 하고 싶어요. 저에게도 너무 큰 존재예요. 매산초, 삼일중, 삼일고였으니까요. 수원의 농구. 연계학교거든요." 영광의 시대도 슬램덩크에 나온 명대사다.

한 장의 사진에는 소꿉친구와 함께한 장면도 있었다. 포즈가 심상치 않았다. 얼핏 보면 마이클 잭슨을 빙의한 줄 알겠는데, 자세히 보면 그냥 동네에서 자란 마이클 우혁(?)이었다. 사진 한 장이 순식간에 어린 시절 소환 버튼이 됐다.

"이 포즈는 친구가 하자고 해서 했어요(웃음). 저보다 한 살 동생인데, 이때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무조건 중학교 1학년 아니면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이 친구는 2살 때부터 알던 친구고 부모님끼리 친하거든요.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죠. 서로 바빠서 많이 만나진 못하지만, 거의 20년 친구죠. 어렸을 땐 자주 만났어요."

#사진_정다윤, 이상준 기자, 점프볼DB(유용우, 배승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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