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화폐 이야기] 46. 디지털로 부활한 공공기관의 생존법

강승구 2026. 4. 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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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결제 플랫폼 확장…ICT 기반 체질 전환
해외서도 주목받는 ‘K-DID’…솔루션 수출 모델 부상
한국조폐공사는 미래지향적이고 글로벌한 ‘디지털 조폐기관’을 목표로 디지털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AI 활용 이미지) [조폐공사 제공]


지갑 속에서 지폐를 꺼내 본 기억이 언제인가. 카페에서 신용카드를 내미는 것조차 이제는 구식처럼 느껴진다. 스마트폰 만 대면 결제가 끝나고, 신분증도 앱 속으로 들어갔다. 현금이 사라지는 시대, 누군가는 종이돈을 만들던 한국조폐공사의 위기를 점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폐공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현금 없는 사회라는 파고를 ‘본업의 소멸’이 아닌 ‘기술의 확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신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넘어, 디지털 시대 공공기관이 나아가야 할 혁신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조폐공사 혁신의 핵심은 자신들이 가진 ‘보안’과 ‘인증’이라는 원천 기술을 디지털로 옮겨온 데 있다. 종이에 새기던 위변조 방지 기술은 이제 모바일 신분증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2021년 모바일 국가신분증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조폐공사는 운전면허증부터 국가보훈등록증, 그리고 최근의 주민등록증에 이르기까지 국가 신분 체계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담긴 신분증은 이제 관공서나 은행에서 물리적인 카드와 똑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위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신원인증(DID) 기술 덕분이다.

결제 플랫폼 시장에서도 조폐공사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지역사랑상품권 앱인 ‘착(chak)’은 이미 전국 82개 지자체에서 사용되며 지역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통합 운영 플랫폼까지 맡으며, 전통적인 화폐 제조 기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결제 서비스 기관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디지털 신원인증과 특정 용도로만 사용 가능한 목적기반화폐(PBM) 결제 플랫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향후 스테이블코인(가치 변동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 제도화될 때 조폐공사가 실무적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한 젊은 여성 고객이 한국조폐공사의 디지털 지역화폐 플랫폼 ‘착(chak)’을 통해 카페에서 모바일 결제를 하고 있다. (AI 활용 이미지) [조폐공사 제공]


이러한 성과는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코스타리카와 필리핀 등은 한국형 모바일 신분증 시스템 도입에 큰 관심을 보였고, 세계은행(World Bank)은 한국의 K-DID 구축 사례를 개발도상국에 전파해야 할 우수 모델로 꼽았다. 돈을 만드는 제조 기업에서 시스템을 파는 솔루션 기업으로 완벽하게 진화한 셈이다.

비단 조폐공사뿐만이 아니다. 국내의 다른 공공기관들도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 서비스의 본질을 바꾸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더 이상 전기만 파는 회사가 아니다. 최근 ‘에너지 AI 플랫폼’ 전환을 선언하며 기존 데이터센터를 AI 전용 센터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전력 공급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이터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한국도로공사 역시 하이패스 시스템의 고도화를 넘어 AI 보이스 로봇, 전기차 충전과 결제를 연계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선보이며 국민 체감도를 높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또한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결합한 디지털클라우드센터를 통해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안전하게 처리하고 재해에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디지털 전환을 단순히 내부 전산 시스템을 고치는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공공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들 기관이 추구하는 혁신의 본질은 화려한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디지털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공공기관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신뢰’와 ‘안전’, 그리고 ‘보편적 접근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과거의 공공 혁신이 조직을 줄이고 비용을 아끼는 ‘효율’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지금의 혁신은 국민의 불편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줄이고 새로운 편의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공기관의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의 영역을 벗어났다. 조폐공사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가치, 즉 ‘신뢰’를 디지털 기술로 어떻게 재해석하느냐가 혁신의 성패를 가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기술이 우리의 손안에서 더 안전하고 편리한 서비스로 구현될 때, 국민은 비로소 공공 혁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돈을 만드는 기관에서 신뢰 인프라를 만드는 기관으로 거듭난 조폐공사의 행보처럼, 우리 곁의 공공기관들이 보여줄 더 똑똑하고 따뜻한 디지털 미래를 기대해 본다.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장


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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