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장금철’ 심야 담화에 3박 4일 냉탕·온탕 오간 통일부 [문지방]
장금철 '개꿈' 한마디에 무너진 현실
반복되는 실망에 국민 신뢰 낮아져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앞으로 남조선 당국과의 무슨 교류나 협력이란 있을 수 없다.”
2020년 6월 북한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하고 담화를 통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남북을 ‘한민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한국과의 모든 연락 채널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1971년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 이래 남북이 이렇게 오래도록 마주하지 않은 건 처음입니다.
그렇게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에 이달 6일 발표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의 심야 담화는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었습니다. 김 부장은 대북 무인기 침투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두고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가수반은 이를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하였다”라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반응도 전했죠. 통일부는 이를 “한반도 평화공존으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면서 남북 양 정상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신뢰 회복 기대에… 다음 날 담화로 '찬물'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한국 정상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건 처음입니다. 북한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조선 당국자’라면서 철면피라고 비판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천지 바보’라고 조롱했죠. 취임 후 대북 방송 중단과 확성기 철거 등 대화의 손길을 내민 이 대통령에게도 ‘비핵화 망상증에 걸린 위선자’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여기에 비춰볼 때 ‘한국 대통령’이라는 호칭과 함께 “솔직하고 대범하다”라는 표현은 고무적입니다. 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무인기 유감 표명 당시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이란 담화보다도 한 단계 나아갔습니다.
북한의 적대적 기조를 당장 뒤엎기는 어렵더라도 신뢰 회복의 바늘구멍으로 삼을 수 있다는 기대가 번졌습니다. 지난 2월 정 장관이 무인기 사건의 재발 방지 차원에서 추진하려던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복원이 탄력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죠. 다만 이런 분위기는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 겸 10국 국장이 다음 날인 7일 자정쯤에 김 부장 담화의 목적이 ‘분명한 경고’였다고 못 박으며 반전됐습니다. 북한은 “개꿈 같은 소리” “비루먹은 개들” 등 거친 말 폭탄도 모자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시위도 강행했습니다.
북한 "접촉 단념"… 통일부 "평화공존 일관 추진"

모처럼의 훈풍은 사흘 만에 시베리아 칼바람이 되어 한반도를 덮쳤습니다.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지나치게 앞서 나가며 북한의 반발을 불렀다는 말까지 나왔죠. 이 대통령을 호평하면서도 “그 어떤 접촉 시도도 단념해야 할 것”이라고 이미 경고했던 북한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런 지적에 “종합적으로 볼 부분이 있다”라면서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이 접촉하는 등 북중미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상황입니다. 주변국 외교로 페이스메이커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통일부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부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온 북한이 언제든 다시 남북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봅니다. 한 통일부 관계자는 “그때를 위해 통일부로서는 할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남북 관계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로서는 북한이 나올 공간을 만들어가야만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대통령의 무인기 유감 표명도 단순한 위기관리가 아닌 평화공존의 사전 작업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죠. 잇따른 이 대통령의 대화 제안에도 반응이 없던 북한이 무인기 사태로 담화전에 나서자, 오히려 소통의 기회로 삼으려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성급한 낙관론이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김여정 담화로 조성된 유화 국면은 다음 날 장금철 담화 한마디에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남북 관계에는 이전보다 더 깊은 불신의 골이 패었습니다. 정 장관이 북한을 고려해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불참을 주장했으나 정부가 참여로 선회하며 혼란을 자초했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공존을 위한 통일부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냉온탕을 오가는 정세 속에 반복되는 실망감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평화공존은 북한에 앞서 우리 국민의 공감과 지지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북한의 말 한마디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평화를 향한 동력은 내부에서부터 먼저 소진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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