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라는 설계도 위에 별자리를 그리다… 도쿄의 밤을 수놓은 피아니스트 임윤찬 [이상권의 카덴자]
1부 치밀한 질서의 건축, 2부 초월적 광휘의 폭발
“피아노라는 악기가 여전히 새롭다는 것을 증명해”

이처럼 전진력이 강한 1악장은 자칫 슈베르트 특유의 여백과 머뭇거림을 좁힐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임윤찬은 음가의 처리와 성부의 균형으로 그 위험을 대부분 상쇄했다. 빠른 템포 안에서도 악상은 납작해지지 않았고, 구조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부각됐다.
2악장에서도 그의 시선은 멈춰 선 아름다움보다 안에서 계속 움직이는 맥박에 가 있었다. 오른손 선율은 충분히 길게 노래했지만 반주의 리듬 위에 안주하지 않았고, 프레이즈의 끝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다음을 예비하는 여운으로 남았다. 그 결과 이 악장은 고요했지만 정지하지 않았고, 감정 또한 구조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얼굴을 드러냈다. 3악장 스케르초는 날렵하게 치고 나갔고, 트리오에서는 음향의 원근이 한순간 깊어졌다. 반복이 많은 피날레 론도에서도 그는 매 귀환마다 아티큘레이션과 페달, 호흡의 결을 조금씩 달리해 같은 재료 안에 미세한 시간의 변화를 새겨 넣었다. 고전적 형식은 끝까지 견고했지만, 그 틀 안에서는 이미 다른 세계의 감각이 조용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2부의 스크랴빈은 세 곡의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소나타처럼 호흡했다. 임윤찬은 2번에서 3번으로 거의 쉬지 않고 넘어갔고, 4번 직전의 짧은 침묵조차 마지막 비상을 향한 숨 고르기처럼 다가왔다. 2번이 자연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불안과 흔들림을 열어 보였다면, 3번은 그것을 인간 내면의 상처와 투쟁으로 끌어올렸고, 4번은 그 긴장을 마침내 빛의 방향으로 밀어 올렸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의 짧은 침묵까지도 이날 연주의 일부처럼 다가왔다. 곧이어 터져 나온 산토리홀의 기립박수는 단지 화려한 기교에 대한 환호만은 아니었다. 피아노라는 익숙한 악기 안에도 아직 듣지 못한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산토리홀을 가득 메운 객석이 함께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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