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대사 "조선일보 보도,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공개서한
특파원 1면 연재, 트럼프 '원유봉쇄' 행정명령 언급 없이 위기 강조
"트럼프가 접수해달라" 표현도…쿠바대사 "핵심 요인 누락, 현실 왜곡"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주한쿠바대사관이 조선일보의 쿠바 관련 연재 보도에 유감을 표명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봉쇄 조치로 심각한 에너지·의료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위기 핵심 요인인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언급하지 않는 등 현실을 왜곡했다는 지적이다.
주한쿠바대사관은 지난 8일 대사관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조선일보 편집국장에게 보내는 주한쿠바대사의 서한'을 공개했다. 클라우디오 몬손 바에사 주한쿠바대사는 지난 3월 31일자로 표기한 해당 서한에서 “지난 3월 27~31일 귀사 워싱턴 특파원이 게재한 다섯 건의 쿠바 관련 기사 내 중요한 정보가 의도적으로 빠지고 쿠바의 현실이 왜곡”됐다며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27~30일 1면과 31일 2면 등에서 쿠바 상황을 다룬 '박국희 특파원 르포'를 연재했다. 수도 아바나가 원유가 끊겨 '칠흑'에 갇혔고, 과거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던 아바나의 골목들은 '악취가 가득한 쓰레기장'이 됐으며, 의약품도 구하기 어려운 의료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30일자 1면 상단 <“차라리 트럼프가 접수해달라, 그게 쿠바 살리는 길”>에서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쿠바인 인터뷰이들이 “트럼프가 하루라도 빨리 쿠바를 침공해줬으면 좋겠다” “쿠바를 접수해 이걸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핵심 위기 요인 누락, 잘못된 결론 유도”
…3회차 르포엔 “쿠바 접수해달라”
쿠바대사관은 이 같은 보도가 쿠바가 처한 에너지 위기가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제재 조치 때문이라는 핵심 사실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몬손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29일 서명한 행정명령을 언급하면서 “국제 언론에서도 광범위하게 보도된 바 있는 현 에너지 위기의 핵심 요인이 해당 기사들에서 누락됐다는 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쿠바는 올초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원유 차단과 행정명령 조치로 최악의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장악해 쿠바에 대한 원유 공급을 끊고, 다른 국가들엔 대쿠바 석유 수출 시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 조치로 쿠바에 원유 공급을 완전히 봉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와 공개 석상 등에서 “쿠바 정부 전복”과 “쿠바를 점령하는 영광”을 언급하고 “(이란) 다음 차례는 쿠바”라고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몬손 대사는 “이는 모든 국제법 규범과 국제 무역 관행에 대한 위반”이라며 “현재 발생하고 있는 정전 사태는 경제적 비효율성의 결과가 아니라 경제적 침략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요인이 누락되면 (조선일보 기사를 읽는) 대중은 당연히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내부 요인에만 집중하고, 쿠바 경제의 실패를 목표로 이웃 강대국이 취한 파괴적 조치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계에서 국제 무역에 자유롭게 참여하지 않고는 기본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쿠바는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와 기본적 필요 및 기초 서비스의 보장을 달성해 왔(다)”고도 했다.
몬손 대사는 특히 “차라리 트럼프가 접수해달라” 기사 제목을 직접 언급하면서 “많은 쿠바 국민에게 국가 존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부가 아닌 '쿠바 국민'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귀사의 독자 여러분은 확신을 가지셔도 된다. '쿠바 국민'은 미국의 개입이나 간섭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경희 편집국장 “더 자세하면 좋았겠지만 의도 아냐”
“트럼프가 접수해달라” 기사에 트럼프 봉쇄 조치 기술 없어

강경희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지난 10일 쿠바대사의 서한에 대한 입장을 묻는 문자메시지 질의에서 “1월에 벌어진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뺐다'고 오인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했다. 그는 “(조선일보 기사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 조치로 쿠바인들이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고 기술했다”면서 총 5번의 연재 중 두 편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 차단'을 언급한 문장이 한 차례씩 포함된 대목을 들었다.
그러나 쿠바대사관이 특히 문제 삼은 <“차라리 트럼프가 접수해달라, 그게 쿠바 살리는 길”>와 <코로나 이어 대정전…두번 죽는 '쿠바 목숨줄' 관광업> 등 기사에서는 관련 조치가 언급되지 않았다. 또 5건 기사 모두에서도 트럼프가 대쿠바 원유 수출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행정명령을 언급하지 않았다.
강 편집국장은 쿠바 대사관의 지면 게재 요청에는 “(쿠바대사관이) 거의 신문 한 면을 할애해야 할 긴 분량을 보내면서 일방적으로 신문 게재를 요청”했다며 “저희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SNS에 공개하셨으니 제가 답변이자 게재 여부를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해당 서한은 지난 3월31일자로, 조선일보에 게재되지 않았고 지난 8일 공개됐다.
미국의 대쿠바 제재는 1960년대 무역 차단에서 시작돼 7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21년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쿠바 경제 생명선인 국제 송금을 제한했다. 2기 행정부인 지난해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유엔에 따르면 이로 인해 필수 의약품 부족이 심화되면서 영아 사망률이 2018년 대비 2배로 증가했다. 올초엔 베네수엘라 원유를 차단하고, 쿠바와 거래하는 다른 국가들에도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완전 봉쇄로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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